[선거와 돈6]제도개혁 어떻게…"비용 상한 높이되 감시 강화"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11분


《“우리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돈 선거’의 피해자이다.”동아일보와 연세대 국제학연구소가 4·13 총선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면 인터뷰 조사에서 70명의 응답자들은 한결같이 “현행 선거구조에서는 누구도 불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실을 감안하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개혁이 이뤄져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선거비용 상한액의 허구〓출마자들은 ‘정치자금(선거자금) 관련 법 조항 중 가장 지키기 어려운 조항이 뭐냐’는 물음에 ‘법정선거비용 상한선’(45%)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유급 선거운동원 수 제한’(20%), ‘사전선거운동 금지’(11%) 등의 순이었다.

▼글 싣는 순서▼

- <1>얼마나 썼나
- <2>후원회와 후원금
- <3>어디에 얼마나 썼나?
- <4>민주당 경선비용
- <5>정치 브로커
- <6>제도개혁 어떻게

서울의 한 민주당 소속 낙선자는 “선거비용 상한선을 올리되 대신 이를 어긴 사람은 아예 정계에서 퇴출시키는 방향으로 일대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북에서 당선된 한 한나라당 의원도 “현실과 동떨어진 한도액(평균 1억2600만원) 때문에 걸려든 사람마다 ‘정치보복’이라며 법 집행의 공정성을 문제삼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전북에서 당선된 한 민주당 의원은 “자원봉사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균 42명 이내로 제한된 유급 선거사무원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그 10배 이상의 조직원을 유급으로 가동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약점으로 잡아 협박하는 브로커들에게 시달리는 출마자도 많다는 것이었다.

▽유권자가 최대 주범?〓출마자들은 ‘막대한 선거자금이 들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권자의 후진적 태도’(73%)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다음은 ‘조직선거와 바람선거의 전통’(19%), ‘선거운동 관련법의 미비’(8%) 순이었다.

강원도의 한 한나라당 낙선자는 “박빙 지역의 경우 유권자의 20∼30% 정도는 돈을 요구한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민주당 소속 낙선자도 “유권자의 60∼70%는 받으면 좋아하고, 20∼30%는 무조건 받으려 한다”고 털어놓았다.

▽선거공영제 확대 요구〓출마자들은 ‘돈을 덜 쓰는 선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선거공영제 전면 실시’(2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경북의 한 무소속 낙선자는 “개별적인 선거운동원은 일절 두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구제 개선(대선거구제 채택)’이나 ‘정당개혁 선행’을 거론한 사람들도 많았다. 서울의 한 민주당 소속 낙선자는 “밑에서 돈을 빨아먹는 지구당 제도를 혁파하고, 당비 납부와 자원봉사에 의해 운영되는 형태로 정당조직이 바뀌어야 돈선거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출마자들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선거공영제 실시’(34%)를 가장 많이 거론했다. 다음은 ‘정치비용공개법 제정’(16%), ‘제도보다는 운영’(11%), ‘선거법 현실화’(8%), ‘후원회제도 개선’(7%) 등의 순이었다.

<박성원기자>swpark@donga.com

▼“돈 앞에선…” 與野 정치자금 개혁 난색▼

여야의 정치개혁 협상에서도 ‘돈 문제’에 관한 논의는 빠져 있다.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된 법제 정비가 시급한 만큼 정치자금 문제는 논의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렸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논의 자체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선 후원금 실명제에 대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즉 100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기부시 수표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한 선관위 개정의견에 대해 여야는 “상당수 기부자가 신분 노출을 꺼리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사실상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 9월 국회를 통과한 자금세탁방지법 협상 과정에서 여야는 정치자금을 이 법의 규제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담합’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내거래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계좌추적권도 한나라당의 반대로 백지화돼 ‘껍질’만 남게 됐다.

중앙선관위 홍순두(洪淳斗) 정당국장은 “정치권이 선관위 안의 80∼90%는 수용해주곤 했는데, 유독 정치자금법안은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선거전략 집권전략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중앙대 장훈(張勳) 교수는 “정치자금 문제를 비롯한 정치개혁 논의가 대권경쟁 때문에 사실상 실종돼 있는 상태”라며 “시민단체와 언론이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정치헌금도 ‘대가성’이 인정되면 처벌하고, 정치인의 입찰 간섭과 공무원에 대한 모든 청탁·알선 행위를 금지토록 하는 ‘알선이득죄 법안’이 의회를 통과, 올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프랑스에서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특별경비로 사적인 여행을 한 사실이 불거지자 의회가 지난달 14일 특별경비 규모를 축소하고 지출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출마자들 인터뷰 반응▼

“돈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지난해 16대 총선 출마자들을 상대로 한 선거자금 관련 대면 인터뷰는 첫 시도였던 만큼 시작부터 많은 벽에 부딪혔다.

인터뷰를 요청 받은 영남지역의 한나라당 의원은 “출마자 중에서 법을 지킨 사람이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고 하세요”라며 손을 내저었다. 서울지역의 한 민주당 낙선자도 “(선거자금) 얘기를 하면 법에 저촉될 것이 뻔하다”며 취재기자를 ‘문전박대’하기도 했다.

낙선자와 당선자의 태도도 달랐다. 특히 선거법 위반 소송에 걸려 있는 당선자들은 대부분 “이런 것을 물어보는 의도가 뭐냐”며 노골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다.

인터뷰에 응하기는 했으나, 선거자금의 수입 및 지출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 묻자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기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이틀 간에 걸쳐 장시간 질문을 하자 “그만둘 수 없느냐”며 연방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에서 당선된 한 한나라당 의원은 “회계장부를 점검한 뒤 답변하겠다. 며칠만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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