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돈 3]어디에 얼마나 썼나?…지역모임 밥값만 6억

  • 입력 2001년 12월 11일 18시 17분


《“안 걸리면 다행이고 걸려도 할 수 없다.”동아일보와 연세대 국제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지난해 16대 총선 출마자들의 선거자금 실사 과정에서 대면 인터뷰 조사에 응한 출마자 70여명은 대부분 이렇게 실토하면서 선거법 위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선거 현실을 ‘원망’했다.》

▼글 싣는 순서▼

- <1>얼마나 썼나
- <2>후원회와 후원금
- <3>어디에 얼마나 썼나?
- <4>민주당 경선비용
- <5>정치 브로커
- <6>제도개혁 어떻게

▼관련기사▼

- 낙선한 정치초년병의 고백

▽오래된 수도관의 ‘누수율(漏水率)’이 높다〓지난해 총선에서 충청권에 출마했던 민주당의 한 인사는 “정치를 오래 한 중진일수록 선거 때 장기간 구축해 온 공조직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나 투자 효율은 낮아 조직관리비가 훨씬 더 든다”고 말했다. 오래된 공조직일수록 선거자금이 많이 샌다는 뜻이었다.

충청지역에서 출마했던 자민련의 한 전직 의원도 “몇 번씩 (국회의원을) 하다 보면 지역구 주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한쪽엔 ‘도대체 해준 게 뭐냐’는 불만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이라며 “그럴 경우 무리하게 돈을 써 공조직을 동원해도 별 효과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또 호남지역에 출마했던 민주당의 한 중진은 “공조직을 한 차례 ‘기름칠’하는데 드는 비용은 8700만원 정도로 선거기간 중 4차례 기름칠을 하는 데만 3억5000만원 가량이 들었다”며 “그러나 그 돈은 거의 조직원들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공조직을 방치할 경우 ‘저 쪽은 안되는 집안’이라는 소문이 돌아 선거를 치를 수조차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조직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사조직이 공조직의 10배 효과〓충청지역에 출마했던 자민련의 한 인사는 “사조직으로 내려간 돈이 가장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영남지역에서 당선된 한 한나라당 의원은 “사조직은 효과면에서 공조직의 10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대면 인터뷰 조사에서도 사조직의 효율성을 인정한 대목이 특히 많았다. 선거기간 중 사조직의 가동은 물론 불법이지만 향우회 동문회 등 사조직은 공조직에 비해 훨씬 열성적이라는 게 출마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충청권에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한 낙선자는 “친척과 종친회, 학교 선후배 등으로 구성된 사조직 2000여명을 가동하는 데 3억원 이상 들었다”며 “그래도 공조직 가동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수준이다. 돈 문제로 인한 ‘사고’ 발생 가능성도 적은 편이다”고 털어놓았다.

▽‘보안’이 생명인 사랑방좌담회·각종 모임〓출마자들이 친목회 동호회 이익단체 등 지역 내 각종 모임에 ‘성의표시’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든다.

경기지역에 민주당으로 출마했던 한 인사는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지역 내 각종 모임에 50∼100차례씩 나갔다. 직접 가는 것은 4∼5차례이고 나머지는 조직원들이 파견됐다. 참석자 한 사람에 1만원 정도의 밥값이 소요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 모임의 참석자를 10명으로 잡고 활동기간을 2개월로만 잡아도 3억∼6억원이 들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는 “금품 제공 자체가 불법이나 모임 측에서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거절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사랑방좌담회 개최와 각종 모임을 통한지지 호소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후보들은 ‘보안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경북지역에 출마했던 한 한나라당 인사는 “그래서 나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주로 반책임자들을 내세웠다. 불가피하게 내가 참석하는 경우에도 밥값은 지지자를 미리 참석시켜 대납(代納)하게 했다”고 밝혔다.

충청권에 출마했던 한 자민련 인사는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노래방 한증막 온천 등지에서 모임을 베풀고 이를 금품 제공의 ‘수로’(水路)로 활용하는 후보도 많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홍보냐, 여론조사냐. 전화명부도 등급 있다〓후보들은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횟수를 대폭 늘려 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경쟁이 뜨거워질수록 초조함도 더해가기 때문이라는 것.

수도권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했던 한 인사는 “2개월간 20여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1차례에 2000만∼3000만원씩 모두 5억원 정도 들었는데 선거일 임박해서는 거의 매일 실시했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내의 여론조사는 물론 불법이다.

대전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한 전직 의원은 “불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자원봉사요원 명목으로 50여명의 전화요원을 채용했으나 ‘자원봉사비’만도 5000만원 들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전화여론조사는 사실상 후보자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지역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한 인사는 “전화대상자 명부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성 또는 입수되며 여러 등급이 있다”면서 “정치 성향을 상세히 알 수 있는 명부일수록 단가가 높다”고 전했다.

<박성원·정연욱·박민혁기자>sw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