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2' 투표 참여 민주당 감표불참 개표 못해

  • 입력 2001년 12월 9일 18시 04분


투표함 봉인
투표함 봉인
한나라당이 제출했던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은 뒷맛이 개운치 않은 ‘미제사태’로 결말지어졌다. ‘민주당의 감표 불참→한나라당의 개표 거부→개표함 봉인’ 과정에서 서로 목청은 높였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도 ‘상처를 입고 싶지 않다’는 속셈에서 상황의 미봉을 묵인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개표 상황〓탄핵안 투표안이 상정돼 투표자 호명이 시작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착석한 채투표를 거부했고, 자민련은 전원 퇴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 전원과 정몽준(鄭夢準) 강숙자(姜淑子) 의원 등 138명의 의원은 투표에 참여했다. 그러나 오전 10시50분경 이만섭(李萬燮) 의장이 개표를 선언하면서부터 본회의장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민주당 측의 감표요원들이 의장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감표위원석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 그러자 이번에는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총무는 “탄핵안이 가결돼 헌재에 넘어가면, 민주당은 ‘감표위원 없이 개표돼 무효다’라고 주장하려는 것 아니냐”며 개표를 저지하고 나섰다.

또 한나라당 백승홍(白承弘) 의원은 “민주당이 의석에 그냥 있는데 왜 개표하느냐. 민주당은 국회의원 배지를 내놓든가, 감표위원이 나오든가 하라”며 소리쳤다.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무가 “한나라당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며 계속 버티자, 이재오 총무는 이 의장에게 “절대로 개표해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퇴장하자 이 의장은 11시15분경 “통탄스럽고 국민에게 송구스럽다. 명패함과 투표함은 봉인해서 영원히 보관하고 국민이 원할 때 법에 따라 공개하겠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의문점〓이날 개표무산 사태는 몇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감표위원이 없을 경우 과연 개표가 불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국회법 규정이 없다. ‘투표를 할 때 감표위원의 참여하에 직원으로 하여금 명패와 투표의 수를 점검, 계산하게 한다’고 돼 있을 뿐이다.

국회 의사국 관계자도 “사회권자인 국회의장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한쪽 당의 고의적인 감표위원 불참행위는 개표 중단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다른 견해를 밝혔다.

봉인된 투표함의 처리문제도 골칫거리다. 관례대로라면 개표가 이뤄지지 못한 채 봉인된 투표함은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소각된다. 아무튼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지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하도록 한 국회법 규정에 따라 9일 오후 2시34분을 기해 안건 자체가 자동폐기된다. 개표할 법적 근거가 없어지는 셈이다.

▽여야의 속셈〓여야는 개표가 무산되자 서로 “개표가 됐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소속인 정몽준 의원은 투표 전 “탄핵에는 반대한다”고 명백히 밝힌 만큼 한나라당 이탈표가 없었다고 전제한다면, 마지막 투표자인 민국당 강숙자 의원의 선택이 관건.

만일 민국당 당론은 반대지만 강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면 재적과반수인 137표 찬성으로 탄핵안은 아슬아슬하게 가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강 의원 측은 “어느 쪽에 투표했는지 말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결국 여도 야도 서로 결과에 자신을 못했기 때문에 ‘개표 무산’이란 상황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훈·윤종구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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