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징용-징병 희생자 37만명 자료 정부서 30년 넘게 방치

  • 입력 2001년 12월 6일 17시 59분


일본 정부가 71년부터 93년까지 4차례에 걸쳐 정부에 전달한 일제하 징용 징병자 37만여명에 대한 기록이 유족 등에게 전혀 통보되지 않은 채 길게는 30년 이상 정부기록보존소에 방치되고 있다.

6일 외교통상부와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71년 10월과 91년 3월, 92년 12월, 93년 10월 4차례에 걸쳐 군인 군속 전사자 명단과 생사 구분이 없는 단순 징용 징병자 명단 등 모두 37만3602명의 명단을 정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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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10월 일본 정부가 당시 재무부(현 재정경제부)에 넘겨준 ‘군인 군속 전사자 명부’에는 2만1699명의 이름과 본적지, 주소, 사망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다. 이 자료를 당시 재무부로부터 넘겨받아 92년 정부기록보존소에 넘길 때까지 보관했던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유가족에게 관련 사실을 개별 통보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징병돼 파푸아뉴기니에서 숨진 부친의 사망 날짜와 장소를 알기 위해 10여년이나 노력한 끝에 지난해 6월에야 확인하게 된 개인사업가 정무호(鄭武鎬·60)씨는 “71년 당시 정부가 사망 관련 기록을 통보해 주었다면 30년이나 엉뚱한 날에 제사를 지낸 불효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당국의 무책임을 지탄했다.

정씨에 따르면 정부가 보관중인 기록에는 부친이 A급 전범과 함께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사실까지도 적혀 있었다는 것.

정부는 93년 이들 기록에 올라 있는 인물에 대한 명단 파악과 전산화 작업에 착수했으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려 겨우 30% 정도만 끝낸 상태다.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 유환석(劉煥錫) 사무관은 “징용 관련 기록물 544권에 대한 전산화 작업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데다 해독이 안 되는 글자도 많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친협의회 김은식(金銀植) 사무국장은 “징용 징병 피해자들이 고령으로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이라도 대통령 직속 특별기구를 만들어 관련 증언을 기록하고 피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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