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감사 '제일銀 헐값매각' 등 안따져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57분


“매수자측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고도 낮은 가격으로 매각한 것으로 보이는 ‘아쉬움’이 있었는 바….”

감사원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공적자금 특별감사 결과보고서 내용 중 제일은행 해외매각 논란과 관련한 평가부분 중 한 대목이다. 낮은 가격에 해외에 매각했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처음 있었던 일인 데다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감사원의 결과보고서에 이런 주관적 표현이 들어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감사원은 제일은행 헐값매각 시비와 관련해 해당기관에 대한 처분(판정) 조치를 내리지 않고 대신 총론 성격의 ‘참고사항’에만 이 대목을 포함시켰다. 보통이라면 ‘불문(不問)’ 처리하면 될 일이지만, 그동안 헐값매각 논란을 제기해온 야당의 눈총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이런 고육책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감사결과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최종 심의과정에선 실무감사팀이 입건해 온 지적사항 중 20여건이 불문 처리됐다. 이중 상당수는 유사한 유형을 한데 묶어 처리됐지만 일부 사안은 감사위원회의에서 격론 끝에 불문 처리됐다. 여기에는 정책담당자의 책임 여부를 따지는 사안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례로 예금보험공사의 부실관리 책임을 묻는 문제를 놓고 감사위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는 것. 부실금융기관에 투입된 공적자금 관리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예보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감사위원회의에선 “당시로선 예보가 감시 감독할 제도적 장치가 없었지 않느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아 불문 처리됐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일부 민감한 사안들이 불문 처리된 데는 해당기관의 막판 로비도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종남(李種南) 감사원장이 지난달 1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이번 감사결과를 보고한 뒤 감사위원회의(11월23∼27일)에 앞서 일부 감사결과가 언론에 보도되자 일부 감독기관은 임직원들을 총동원해 적극 해명에 나서는 등 총력 공세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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