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방적 쌀지원 안 된다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55분


북측이 엊그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무산시키더니 어제는 제2차 금강산 당국간 회담을 예정대로 19일 금강산에서 열자고 통고해 왔다. 남북 현안 중 계속할 것과 중단시킬 것을 자기들 입맛대로 취사선택하는 북측의 행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선 금강산 회담이 열려봐야 별무소득일 공산이 크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얼마 전 북측이 밀린 관광대가 2400만달러 문제를 새롭게 제기했다는 사실과 제1차 금강산 회담이 실속 없이 끝났다는 점을 볼 때 그렇다. 북측이 그 돈을 받아내고, 나아가 관광대가 총액 9억4200만달러를 우리 정부가 보장해주지 않는 한 육로관광로 개설의 필수 코스인 군사실무회담은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금강산에서 2차 회담에 응해줄 경우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단을 연기시킨 논리를 인정해주는 결과가 된다.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을 무산시키면서 내세운 논리가 ‘남쪽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이번 회담도 ‘안전한’ 금강산에서 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어제 일단 ‘금강산 회담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이번만큼은 회담 보이콧을 포함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하지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민주당의 대응은 사뭇 실망스럽다. 김 대통령은 어제 “남북관계에는 자주 진통과 애로가 있으나 햇볕정책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말해 대북 식량지원 등 포용정책을 견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민주당 전용학(田溶鶴) 대변인도 “포괄적 상호주의를 견지하되 이산가족 상봉사업과 대북 쌀지원 문제를 직접 연계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제멋대로인 북측에 대해 우리가 더 단호한 입장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원칙론’만 되뇌고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묻고 싶다.

전 대변인은 또 “대북 쌀지원 문제는 인도적 사업이라는 측면과 국내 재고미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농업정책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이 또한 시의에 적절치 않은 발언이다. 국내적으로 재고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는 해도 그것을 마치 광고라도 하듯이 여러 차례 밝히다 보면 ‘줄 것을 다 주면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듣지 못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일방적인 대북 쌀지원은 안 된다. 만약 정부가 이번에도 ‘포괄적 상호주의’와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논리를 앞세워 쌀을 준다면 국민 여론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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