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국정진단 초심과 현실3]相生정치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26분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난국은 여러분의 협력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저도 모든 것을 여러분과 같이 상의하겠습니다. 나라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금년 1년 만이라도 저를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창한 국정 청사진으로 가득 차는 게 보통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읍소’에 가까울 정도의 표현으로 여야 협력을 당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3년반이 지난 지금, 김 대통령이 대야(對野) 관계에서 이런 식의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나라당에선 오히려 연일 ‘대통령이 오만과 독선으로 야당을 탄압한다’고 비난하는 성명과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24일 동아일보사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 대통령은 여러 국정과제 가운데 유독 ‘대화와 협상을 통한 국정운영으로 의회 민주주의 확립’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잘못했다’가 66.5%인 반면 ‘잘했다’는 30.8%에 그쳤다.》

왜 그럴까. 40년 넘게 모진 야당 생활을 해온 김 대통령이 다른 분야도 아닌 여야 관계에서 이렇게 혹평을 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국회 내 인치(人治) 논란▼

원내총무를 지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여당 총무와 마주앉아 회담을 하다 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총무의 권한이 있다고 해도 재량권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 누군가의 재가가 없이는 협상에 진전을 보기 힘들고 특정 현안은 아예 협상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는 것이다.

박희태(朴熺太) 부총재는 총무 시절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98년 12월 말 국회 본청 529호를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사무실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여야 합의로 현장 조사를 하기로 했는데 여당 총무가 상부 지시로 갑자기 합의를 깨는 바람에 흥분한 한나라당 사람들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는 불상사가 생겼다는 것. 박 부총재는 “당시 여당 총무도 다들 알아주는 실세였는데 그 윗선이라면 누구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재오(李在五) 총무는 아예 노골적으로 김 대통령을 지목했다. 여당 총무단이 회담에서 종종 “○○법은 대통령이 약속한 사안이니 꼭 처리해야 한다”거나 “△△법은 대통령이 시민단체에 이달 중에 해주기로 했으니 좀 봐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김 대통령이 소소한 국회 안건까지 직접 챙기거나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하다는 주장이었다.

▼싣는 순서▼

- ①남북관계
- ②국민화합
- ③相生정치
- ④시장경제
- ⑤사회개혁
- ⑥언론자유

경희대 임성호(林成浩) 교수는 “진정한 의회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모든 의원이 다 헌법기관이라는 대전제가 충족돼야 하는데 우리 의원들은 여야 모두 소속 정당 보스의 지시에 따르는 하수인 수준인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적(數的) 우위 집착▼

김 대통령이 대통령선거에 승리한 97년 12월 18일 국민회의(77명)와 자민련(43명)의 의석은 120명으로 한나라당(164명)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2년 후인 99년 12월 말에는 국민회의(103명)와 자민련(55명) 의석은 158명으로 한나라당(131명)을 앞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거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탓이다. 작년 16대 총선 후에도 민주당은 115석을 얻는 데 그쳤으나 무소속 4명을 영입하고 자민련(17명) 민국당(2명)과 3당 정책연합을 이뤄 원내 과반수(137명)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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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무리하게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바꾸며 ‘힘의 정치’에 의존하는 데에서부터 여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김 대통령은 이 때부터 야당을 ‘대등한 협상 파트너’라기보다 ‘설복 시켜야 할 대상’ 정도로 간주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건국대 백영철(白榮哲)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소수파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소수의 적법한 존재를 부정하는 다수의 횡포가 있는 한 의회정치는 요원하다”고 단언했다.

▼대화와 타협의 길▼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김 대통령이 취임 초만해도 여소(與小)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원만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99년 ‘옷 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김 대통령이 ‘야당과 언론이 별 것도 아닌 사건을 통해 악의적으로 다수의 힘을 이용해 소수 여당을 핍박하려 한다’고 판단, 대야(對野) 강경노선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여야 사이의 물밑 협상을 담당하던 중진의원들도 역할을 잃게 됐다는 것.

한 당직자는 “지금은 여야 모두 협상파가 궤멸된 상태여서 여야 영수회담을 하려 해도 비공식적으로 야당측 견해를 조율할 사람이 마땅치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사소한 돌출 사안에도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것도 이런 대화 창구가 없어진 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고려대 김병국(金炳局) 교수는 “여야가 마치 거울을 보듯 한쪽이 강하게 나오면 다른 한쪽도 강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여야 공동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무게를 여당쪽에 더 두었다. 그는 특히 “김 대통령은 오랜 시간 개발독재 권력에 대항하면서 ‘힘이 모든 것이다’,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을 갖게 된 것 같다”며 “민주주의에서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대화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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