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방문단 서울과 평양으로 각각 귀환

  • 입력 2001년 2월 28일 18시 58분


제3차 이산가족 교환 방문단이 2박3일간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한 채 28일 서울과 평양으로 각각 귀환했다.

북한적십자회 김경락(金京落)상무위원을 단장으로 한 북측 방문단은 오전 10시 아시아나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해 평양으로 돌아갔으며, 장정자(張貞子)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비롯한 남측 방문단은 낮 12시경 같은 비행기로 순안공항을 이륙, 서울로 돌아왔다.

남북의 방문단은 오전 귀환에 앞서 숙소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30여분간 마지막 상봉 시간을 가졌다.

탈진상태에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 평양 친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손사정할아버지(90)는 이날 아침 기력을 회복, 고려호텔로 돌아와 아들 양록씨(55)와 극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한편 북측 김경락 단장은 서울 출발성명에서 “북으로 갈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국군포로등 해결 실마리 1회성'한계 여전▼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1회성 행사’라는 한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국군포로의 상봉은 2차 교환방문에서는 비공개로 이뤄졌으나 이번에는 북측이 중앙TV 뉴스를 통해 이를 먼저 보도함으로써 공개됐다.

북측은 이들을 ‘의거입북자’라고 부르면서 상봉의 의미를 평가절하했으나 어떻든 북측이 남측이 제시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상봉 해법에 호응해 온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낳았다. 그러나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은 ‘냉전의 희생물’로 다른 이산가족들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마다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도 북측 가족들의 체제선전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북측 가족을 만난 최경석씨(66)는 “김일성 장군의 사진을 어머니께 보여주겠다”고 사진첩을 꺼내다가 남측 진행요원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28일 평양으로 귀환한 한 북측 이산가족은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님께’라고 쓰여진 꽃바구니를 남측가족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해 한적과 관계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남측 가족들은 북측 가족의 판에 박힌 체제선전에 의연히 대처하면서 오히려 더 따뜻하게 북녘 가족을 감싸안아 이념보다 더 진한 핏줄의 정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체제선전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적당한 선에서 그것을 끊어주는 것이 오히려 북측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또 체제선전과 같은 부작용과 ‘1회성 행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면회소 설치가 절실한 과제임이 다시 확인됐다.

이번 상봉은 일부 질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양적인 변화도 있었다.

북측 이산가족 100명은 서울에서 750여명의 가족과 만났고 남측 이산가족 100명은 평양에서 가족과 친척 243명을 만났다. 교환방문이 한번 이뤄질 때마다 상봉가족이 1000여명에 이른 셈이다.

1∼3차 교환방문을 통해 상봉한 이산가족 연인원은 3000여명에 이른다. 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사람은 6000여명에 달한다. 물론 76만7000명으로 추산되는 전체 이산가족(2, 3세대 포함) 수에 비하면 아직 크게 부족하지만 교환방문의 지속이 그나마 이산의 한(恨)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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