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이산상봉 스케치]성경희씨 어머니 "죽어도 여한없다"

  • 입력 2001년 2월 27일 18시 59분


▼서울에서▼

○…개별상봉에서 51년 만에 북의 남편 황창수씨(84)를 롯데월드호텔 숙소에서 만난 송순섭씨(82)는 “다시는 나를 잊지 말기 바란다”며 새로 마련한 금반지를 남편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50년 6·25전쟁 당시 전북 고창군 성내면에서 살고 있었던 송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자녀 3명과 함께 남편이 사망한 줄 알고 제사를 지내왔다. 딸 둘, 네살배기 아들 1명과 함께 50년간 수절한 송씨는 “어제는 남편 얼굴이 기억조차 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모습이 희미하게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북에서 온 최경석씨(66)는 남측 가족들에게 “김일성 장군의 사진을 어머니께 보여주겠다”며 사진이 실린 책을 집어들려고 하자 남측 진행요원이 “합의사항 위반”이라며 제지.

이 과정에서 최씨는 “왜 자유로운 상봉을 가로막느냐”며 거칠게 항의했고 남북 양측 진행요원들간에 몸싸움과 욕설이 오가기도.

○…이날 낮 롯데월드호텔 3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오찬에서는 테이블 곳곳에서 ‘건배’ 소리가 터져나오고 ‘백도라지 타령’‘고향의 봄’‘반갑습니다’ 등의 노랫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흥겨운 분위기.

정지용 시인의 장남 구관씨(72)는 북에서 온 동생 구인씨(67)에게 건배를 권하며 “꿈엔들”이라고 외치자 가족들이 모두 “잊힐리야”라고 화답.

○…역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 공동 만찬은 제3차 이산가족상봉의 사실상 마지막 공식행사여서 남북의 가족들은 눈물 속에 기약 없는 석별의 정을 교환.

만찬이 시작되기 전부터 내내 울음을 터뜨리던 이봉희씨(72)는 남편 유남수씨(74)가 만찬장에 들어서자 유씨의 품에 안겨 “또 다시 헤어져야 하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유씨도 이씨를 안으며 “헤어진 뒤 단 하루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해 가족들이 일시에 통곡. 북에서 온 아들 이강술씨(70)의 어머니 송오례씨(90)는 내일 아들이 떠난다고 가족들이 말하자 “가긴 어딜 가느냐”면서도 “통일되면 다시 오겠다”고 말하는 아들의 입에 떡을 넣어 주며 눈물. 만찬이 끝나자 숙소로 돌아가던 북측 가족에게 손을 흔들던 남측 가족 일부는 호텔 복도 벽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려 만찬장 주변이 울음바다. 이에 앞서 북측방문단은 오후 4시반부터 창덕궁을 관람. 아현동에서 살았다는 정두명씨(66)는 50여년 만에 보는 창덕궁 모습에 옛 추억이 떠오르는 듯 “창경원과 창덕궁에 놀러왔었는데 창경원이 어느 쪽이냐”고 안내원에게 질문하는 등 감회어린 표정.

<전승훈·전창·정위용기자>raphy@donga.com

▼성경희씨 어머니 "죽어도 여한 없다"▼

○…아들과 두 딸을 북에 남겨두고 홀몸으로 남으로 내려온 죄책감에 51년 동안 재혼도 하지 않은 김유감할머니(77·경기 광명시)는 상봉장에서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억장이 무너졌다. 딸 김순영씨(56)와 순복씨(53)에게 “아들이 어디 갔느냐”고 물었지만 “오빠가 중국 출장을 가는 바람에 나오지 못했다”는 대답만 들었다.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 김할머니는 “내 나이 벌써 80이 다 됐는데, 지금 못 만나면 언제 만나겠느냐”며 한동안 허공만 바라본 채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해 8월 1차 이산가족 방문단 북측 단장 자격으로 서울에 왔던 유미영(柳美英·79)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과 이번에 여동생을 만나러 평양에 간 사돈 손성근씨(79·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만남이 추진됐지만 불발로 끝났다.

한적측은 북적에 의뢰해 이들의 상봉을 추진했지만 유위원장이 최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한덕수의장 장례식 참석차 일본에 가는 바람에 무산됐다.

○…치매를 앓아온 손사정씨(90)는 수십년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난 데 따른 충격으로 탈진해 27일 새벽 동평양 문수거리 친선병원에 입원했다. 북측은 이날 아들 양록씨(55)가 병원에서 아버지 손씨를 만나도록 허용해 북측에서 첫 ‘병원 상봉’이 이뤄졌다.

또 7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를 타고 방북한 이후성씨(84)와 폐기종으로 서울대병원 입원 중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방북길에 오른 임재화씨(85)는 만찬 도중 기침을 하는가 하면 답답하다고 호소,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가 의료진의 진료를 받았다.

○…“이곳에 있으면 장군님이 내 미래 운명, 그리고 가족들을 책임져 줄 수 있어서 내가 남기로 한 거야. 남에 갔으면 엄마가 내 운명을 책임지지 못했을 거잖아. 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엄마.”

“말 안해도 다 안다.”

69년 대한항공(KAL)기 피랍사건 당시 여승무원으로 북에 남게 된 딸 성경희(成敬姬)씨와 27일 고려호텔에서 이틀째 만난 이후덕(李後德)씨는 “잘 사는 네 모습을 봤으니 이제 돌아가면 걱정 안할 거다”라며 딸을 안심시켰다.성씨는 북에서는 최고의 표창으로 알려진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친필사인이 새겨진 시계를 보여주며 “장군님께 의탁하고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인민군 중사인 외손자 임성혁씨는 “할머니 한번 업어봅시다”라며 손자노릇을 했고, 이후덕씨는 외손녀 임소영씨에게 손수 뜨개질을 한 목도리와 모자를 선물했다.

다음달 6일이 생일인 이씨는 서울에서 준비해간 케이크로 조촐한 생일잔치를 열었다. 이씨는 “생일까지 미리 당겨서 큰딸 가족들과 보내고 나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연방 눈가를 훔쳤다. ○…전쟁통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국군포로 김재덕씨를 50년 만에 만난 남측 동생 재조씨는 27일 고려호텔 객실에서 이뤄진 개별상봉에서도 전날 상봉의 감격을 잊지 않으려는 듯 형을 부둥켜안은 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재조씨는 “부모에게 밥 한술 올리지 못한 불효자식”이라며 자신을 탓하는 형 재덕씨에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삶이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차남으로서 제가 모셔야죠”라며 위로했다. 청진의 나남기계공장에서 근무한 공로로 가슴에 훈장 4개를 달고 상봉장에 나타난 재덕씨는 “열심히 일한 덕에 이같이 훈장도 받고 잘 살고 있다”며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통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살자”고 말했다.

<하태원기자·평양〓공동취재단>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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