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의원 기소 안팎]'1만달러 수수' 면죄부 주나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40분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과 940억원 국고환수 소송에 이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의 명예훼손혐의 사건도 잇따라 법원으로 넘겨진 데 대해 논란과 여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예민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공방의 무대’가 잇따라 법원으로 옮겨진 것을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정의원 기소의 의미〓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만달러 수수설’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고 정 의원은 서경원(徐敬元) 전의원을 고문했다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검찰은 30일 정 의원에 대한 공소장을 통해 “김 대통령은 서 전의원에게서 북한의 공작금 1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는 89년 8월 당시 검찰이 내놓았던 김 대통령의 1만달러 수수 및 불고지(不告知) 사건 수사 결과를 전면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당시 검찰은 서 전의원이 북한의 허담(許錟)에게서 5만달러를 받아 그중 1만달러를 평민당 총재였던 김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그 사실을 알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김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했었다.

결국 검찰은 당시 수사팀의 과오를 인정한 셈이 되어 내부적으로 부담을 안게 됐다. 또 이 부분은 “검찰수사 결과로 증명된 사실을 말했다”고 주장하는 정 의원이 명예훼손 혐의를 벗기 위해 검찰을 공격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에서 정 의원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1만달러 수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김 대통령이 ‘북한의 공작금’인줄 알고 받았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김 대통령이 북한 공작금 1만달러를 받았다”고 발언한 정 의원은 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안기부 관계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공소장에서 정 의원이 서 전의원을 심하게 구타해 왼쪽 눈 주위에 멍이 들게 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잇따른 불구속기소 배경〓주목되는 것은 검찰이 이들 예민한 사건을 서둘러 법원에 잇따라 넘긴 배경. 이들 사건은 당사자인 야당 의원들이 검찰 출두를 거부하는 바람에 수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피의자 진술서도 갖춰지지 않았다. 검찰은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기소가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이처럼 ‘설익은’ 사건을 법원에 넘기는 것은 아무래도 이례적이다.

일부 법조인들은 검찰의 ‘정책 변화’가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실체적 진실 발견’에 대한 임무를 일정 부분 법원에 맡기려 한다는 것이다. 검찰 간부도 “야당도 법원을 상대로 ‘정치법원’ 소리는 못할 것 아니냐”며 “우리가 사사건건 ‘정치검찰’ 시비에 시달리느니 결과야 어찌 되든 차라리 법원의 심판에 맡기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간부는 “야당 의원들도 법원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검찰에서의 피의자 진술이나 법정에서의 피고인 진술이나 크게 차이가 없는 이상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즉 법원에서는 공개된 장소에서 진술하는 것이니 만큼 조작 시비도 차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총풍식(式) 사건 해법’이라는 얘기도 있다. 수사과정에서 격렬한 정치공방이 일었던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이 지난해 12월 1심 재판에서 피고인 모두 법정구속됨으로써 검찰로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을 본떴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전개나 여론이 검찰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한 판사는 “모든 형사재판에서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며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유죄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불이익은 전적으로 검찰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섣불리 법원을 정치공방에 끌어들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수형·이명건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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