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회견 이모저모

  • 입력 2001년 1월 11일 11시 48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1일 오전 연두기자회견은 안기부 예산 총선유용 사건, 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 파문 등 복잡한 정국상황과 경제난 극복 및 남북 문제 등 국정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열려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18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청와대 춘추관 대회견장을 가득메운 가운데 1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KBS, MBC, SBS, YTN 등 주요 방송들은 회견을생중계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정각 회견장에 입장해 17분 가량에 걸친 모두 발언을 통해 먼저 "올해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을 극복하고 21세기 경제강국의 기반을 닦는 전진의 한 해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얘기를 풀어 나갔다.

이어 김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산적복지의 3대 국정철학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왔다"면서 "국내외가 인정하는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하지만 국민 여러분이 느끼는 현실은 이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면서 "정치는 불안정하고 경제는 체감경기가 매우 나쁜 상황이며 사회적 소외계층 문제도 크다"며 "국정의 책임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야당과는 일시적 경색에도 불구하고 공생의 기반 위에 협력해 나가겠다는 원칙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다"면서 "정도와 법치의 정치를 펴 나가겠다"고 다짐하면서 `국민화합을 위한 인사정책의 획기적 개선',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 대책' 등의 입장을 밝혔다.

또한 김 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 국방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약속대로 반드시실현되도록 하겠다"면서 "미국의 부시 신 행정부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이며 한.미.일 공조도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가겠다"고 대북햇볕정책의 지속적인 추진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또 경제난 극복과 관련해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며 "지나친 위기의식은 구매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증시침체를 가속화시켜 진짜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고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와함께 김 대통령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평가하면서 4대 개혁의 착실한 이행을 통한 힘찬 회복을 전망하고 있다"면서 "총력을 다해서 당면한 고난을 극복해 국운 융성의 21세기를 열어가자"고 촉구했다.

이날 김 대통령은 회담 직전까지 모두 발언의 문구 하나 하나를 되짚어보며 직접 손질하는 등 향후 국정운영 전반에 관한 청사진을 밝히는 이날 회견에 각별한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 이어 17명의 내외신 기자들로부터 `DJP 공조'와 김 대통령의 `강한 정부론', 구 여권에 대한 안기부 예산의 선거자금 지원 수사,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김 대통령의 비자금에 관한 입장 등을 질문 받고 조목조목 차분하고 침착한 어조로 국민들에게 설명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안기부 예산의 총선 유입 사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검찰이독립해서 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할 것'임을 밝혔으며, `정도와 법치의 정치를 펴나가고 부정부패를 철저히 척결하겠다'라는 `강한 정부론'을 피력하는 대목에서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국내 언론에서는 현 정국 상황과 경제난 극복에 관심을 쏟은 반면, 외신 기자들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한국의 대북 정책 및 미·북 관계의 변화가능성 등을 집중 질문했으며, 중국 기자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실현될 경우 한·중 관계의 영향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김 대통령은 이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때로는 유머를 섞어가며 좌중의 웃음을 유도하는 등 여유있게 대처했고, 질문내용을 일일이 받아 적으며 답변을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 대통령은 대체로 한 질문에 5분을 넘지않는 선에서 간결하게 입장을 밝혔으나 경제분야에 대해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구체적인 수치 등을 들어가며 정부의 경제정책 등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때로 관계장관들에게 보충답변을 하도록 했다.

기업·금융 구조조정 추진방향에 관한 질문에 김 대통령은 "중요한 질문을 했다"고 운을 뗀 뒤 "국내에 와 있는 외국은행은 1인당 부가가치가 1억원이나 우리 금융기관은 5000만원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래선 안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에 대해선 배석했던 진 념(陳 稔) 재경부장관에게 대신 답변토록 하는 등 경제분야 설명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특히 증시 활성화 방안에 대해선 "왕도는 없고 정도만 있다"면서 "4대 개혁과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하고,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개각의 시기와 폭, 자민련 인사 입각 여부 등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오늘 여기서 보따리를 다 풀어 버리라고..."라고 조크하면서 "궁금하겠지만 기다려 달라. 오늘 시원한 답변을 못해 미안하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또 정계개편 여부에 대해선 "자라보고 놀란 사람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들어본 일도 없고 주위에서 논의한 일도 없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남북관계에서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오늘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며 좌중의 웃음을 유도한뒤 "우리가 끌려간 것도 끌려온 것도 없다"면서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가 더 많이 얻었다"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 이적'과 관련, "과거에 전례가 없는 일로 민주당도썩 기쁜 것은 아니다"면서 "국민이 비판한다면 겸허히 듣겠으나 야당이 이를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기부자금 파문'에 대해 김 대통령은 "전적으로 검찰이 법률에 의해 수사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라도, 사견이라도 개입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만큼 의견을 말하는 것을 삼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공산당잡는 국가안보 예산을 도용한 범죄행위를 수사하는 것이지 정치자금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초점을 다른 데로 가져가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간의 대야(對野) 관계에 대해 김 대통령은 "부덕의 소치이겠으나", "불행하게", "심한 괴로움을 당했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시종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회견은 모두 발언에 이어 정치, 경제, 대북관계, 외교 등에 관한 질문이 계속되면서 당초 예정시간을 넘겨 1시간 15분간 진행됐으며, 김 대통령은 시종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회견에 임했다.

회견이 끝난 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당면한 경제의어려움 극복과 앞으로 국가경제의 비전을 큰 틀에서 제시했다"면서 "이날 발언의 3분의 2가 경제분야에 치중됐던 것에서도 김 대통령의 올 한해 국정운영의 최대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오늘 회견에서 국정의 여러 현안들에 대해 어떤원칙을 갖고 갈 것인지를 개략적으로 언급했다"면서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강한 정부론'이 회견의 큰 줄기임을 시사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자민련과의 공조, 안기부 예산의 총선 유입, 의원이적의한나라당 책임론 등을 분명히 한 것은 김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이 확실한 방향성속에서 움직일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이날 회견을 마친 뒤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 대통령이 모두 발언에서 언급했던 `언론개혁'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한 관계자는 "자율적 개혁의 틀 속에서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재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또 다른 관계자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키고, 언론의 비대화나 권력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 함축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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