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장관급회담]北실리-南명분 '윈윈 거래'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43분


평양에서 열린 제4차 장관급회담이 북한의 전력지원 요청이라는 복병을 만나 비틀거렸다. 남측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한 12일부터 북측은 공식회담 석상 등에서 ‘주적(主敵)’문제로 남측과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력난의 심각성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문제는 북한의 전력지원 요구가 일회성 발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북측은 9월 제주에서 열렸던 3차 장관급회담에서 공식적으로 200만㎾(발전설비용량)의 지원을 요청했었으나 정부는 즉답을 피했다. 정부로서는 상호주의 원칙을 벗어난 대북지원은 곤란하다는 국민적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 더군다나 식량 60만t을 주기로 한 상황에서 북한의 전력요청까지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는 게 정부 고위당국자의 설명.

회담관계자는 “북한이 스스로 ‘공화국 최대의 과제’라고 부르는 전력지원 문제가 겉돌면서 이번 회담이 계속 공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 모두가 6·15공동선언 6개월째를 맞아 진행한 회담에서 남북화해 정신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함으로써 남북은 극적으로 공동보도문 작성에 의견을 접근시켰다. 이는 한편으로는 남측의 전력지원과 북측의 이산가족 합의사안 이행이 절묘하게 맞거래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이산가족 문제는 일단은 북측의 사업수행 능력을 고려해 시범사업 위주로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생사 및 주소확인 작업과 서신교환사업은 내년 1월과 2월에 각각 100명씩으로 제한됐다. 당초 5일부터 실시키로 합의됐었던 3차 이산가족 교환도 북측의 인력난 등을 감안해 내년 2월로 연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북이 이처럼 4차 장관급회담에서도 ‘극적’인 타결을 보았지만 한편으로는 남북이 합의했던 사안의 일정을 재조정하는 수준에 그치면서도 경제협력추진위원회라는 ‘모자’를 쓰고 남측이 전력제공을 간접적으로 약속하는 등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짚을 것은 짚으며 남북관계 변화와 발전을 평가한 후 끌고 가겠다고 했던 당초의 전략과도 상당히 벗어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북 제안 배경…남 전력-북 어장 맞교환할까▼

북한이 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전력 지원과 남북어업협력을 제안한 것은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난과 경제난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전력 지원 요청〓북한이 요청한 전력 200만㎾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 함남 신포에 건설중인 경수로(100만㎾급) 2기와 같은 규모.

올 3월 기준 북한의 발전설비 용량은 739만㎾로 남한(4705만㎾)의 6분의 1. 이중 전력 생산이 가능한 ‘실질 발전설비 용량’은 전체의 27%인 200만㎾로 북한이 현재 전력 생산량과 맞먹는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북한의 실질적 전력 소비량은 114억㎾h로 남한(2142억㎾h)의 5%수준. 쉽게 말해 지금의 북한의 전력 생산으로는 가정에서 백열등을 하나 정도 켤 수밖에 없다. 북측이 당장 지원을 요청한 50만㎾도 대략 건설비가 6000억원인 화력발전소 1기의 발전설비 용량이다.

정부가 대북 전력 지원을 북측에 약속한다고 해도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정부와 한전은 평양 등 북한 4개 지역에 170만㎾ 규모의 전력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남북한 전력분야 협력방안’ 등을 마련했으나 이는 장기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송전망을 연장해 전력을 공급하고, 중장기적으로 대용량 화력발전소를 공동 건설하고 남북전력선을 연결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이에 따라 현대 개성공단의 경우 문산변전소에서 154㎸급 송전선로로 10만㎾의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도 34개월의 기간에 약 1000억원의 공사비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어업협력〓북한이 제안한 공동 어로구역은 올 2월 남측 전국어민총연합회(전어총)와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합의한 원산 동쪽 300㎞ 해역의 은덕어장. 이 사업은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된다. 남측 입장에선 북방한계선(NLL)인근 어장에 고급 어종이 많고, 어선 피랍사건 등의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 반면 북측으로서는 선박이 낡은데다 에너지 부족으로 300㎞의 먼 해상까지 나가서 고기를 잡을 수 없는 형편. 또 북측 어민들을 남측 선박에 태워 어로 활동을 할 수 있고, 어획량과 어선수에 따른 입어료도 받을 수 있다.

<신연수·김영식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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