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방미취소 파장]南-北-美 입장

  • 입력 2000년 9월 6일 18시 44분


북한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미국 방문 취소를 보는 관계 당사국들의 입장과 손실계산은 어떤 것일까.

▽북한〓북한은 국가적 자존심을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작은 나라일수록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듯이 북한에 이 문제는 중요하다. 단순히 서방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교적 호기(好機)를 놓쳤다.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라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잘 활용하면 ‘고립’과 ‘불가예측성’이 그 특징으로 인식되어 온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를 단숨에 씻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알고도 그랬다면 ‘왜’라는 의문이 강하게 남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측이 이번 방미 취소를 그동안 대미관계 개선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온 ‘무성의’에 대한 불만 표출의 기회로 활용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90년대 초반 이래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에서 빼달라는 자신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조금도 입장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해 극심한 불신과 불만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왔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보면 북한으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셈일 수도 있다.

더욱이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에 올라있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 수치인데 미국의 일개 항공사가 명목상이라고는 하나 엄연한 북한의 국가수반을 마치 테러범 다루듯 몸수색하려고 한 데 대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미사일회담을 비롯한 대미관계 개선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미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압박은 북한이 의도했든 않았든 간에 대미협상에서 또 하나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미국 정부는 표면상 이번 사태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번 파문이 “민간항공사의 규정에 따른 보안검색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이 주최하는 리셉션(8일)에 초청된 김상임위원장이 미국적 항공사의 ‘결례’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은 미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북한이 앞으로 외무성 성명 등을 통해 대미 강경 대응을 선언함으로써 각종 북―미회담이 답보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본의 아니게 한―미―일의 대북 공조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미국으로서도 역시 부담이다.

▽한국〓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나라”라고 말했다. 유엔에서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과시하고 한반도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조와 지지를 이끌어내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55년간 남북한 이념대결의 장이던 유엔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하는 의장성명을 이끌어내 남북 협력 외교의 첫걸음이 되도록 하겠다던 계획도 물거품이 돼 버렸다.

외교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보다 진전돼 북한이 주독일 한국대사관에게 협조요청만 할 수 있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방미 취소 파문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남북관계에 영향은 없다고 공언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북한 대표단 탑승 거부 사건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주장

-북한미국
신체 검색“인체의 창피한 부분까지 샅샅이 조사했다.”(이하 최수헌 외무성 부상)“양복 상의와 신발을 벗기는 정도였다.”(이하 아메리칸 항공)
김영남위원장 검색“단호히 거부했다.”“비행기 출발예정 10분전에 동의했다.”
비행기 좌석 취소“우리에게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취소했다.”“대표단을 더 늦은 뉴욕발 항공편에 탑승토록 에스코트했으나 북한측이 이를 거부했다.”
미국 정부 개입여부“미국 정부가 비자를 발급해준 뒤 이처럼 방해 책동을 벌이는 것은 ‘불량국가’의 전형이다.”“민간 기업인 아메리칸의 공항 검색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미국 정부와는 무관하다.”(국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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