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달현 재등장]대외정책 변화조짐…개방파 입지 주목

  • 입력 1999년 10월 29일 19시 47분


북한의 경제개혁파로 평가됐던 전 부총리 김달현(金達玄)이 실각 이후 약 6년 만에 공개석상에 다시 등장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그의 현재 직책은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참사’. 따라서 그의 동정(動靜)이 북한 관영언론에 소개됐다고 해서 그가 권력핵심에 복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동안 그의 숙청설까지 파다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재기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가능해진다.

북한문제에 정통한 일본소식통은 “김달현의 재등장은 권력층 인사의 단순한 부침(浮沈)이 아니라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라는 큰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94년7월 김일성(金日成)사망 이후 폐쇄정책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올들어 나타난 일련의 움직임은 북한이 조금씩 개방 쪽으로 돌아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6월에 중국을 방문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영남(金永南)상임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8월에 나온 북한의 ‘정부성명’은 “일본이 과거사문제 등에 성의를 보인다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9월에는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해 활발한 ‘유엔외교’를 폈다. 북―미(北―美)협의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도 일단 줄어든 상태다.

김달현은 93년 실각때까지 출세가도를 달렸다. 김일성 사촌누이의 사위인데다 김정일(金正日)총비서의 측근이었다. 김달현은 90년에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장 겸 무역상, 92년12월에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 노동당 정치국원후보가 됐다.

그는 특히 92년7월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 대우자동차 등의 공장을 둘러보고 개방의욕을 비쳤다. 그런 그가 93년12월 부총리 등에서 해임된 것은 북한 권력내부기류가 바뀌어 그의 방한중 언동이 뒤늦게 문제됐기 때문인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제10기 최고인민회의선거에서도 대의원에 선출되지 못했다.

그동안 김달현의 재기가 어려웠던 것은 김일성 사망후 북한이 ‘국가비상체제’에 돌입하고 대외적으로도 폐쇄정책을 취하면서 개방파의 설 곳이 좁아졌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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