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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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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깅리치는 78년 하원의원으로 워싱턴 정가에 입성한지 20년만에 정치인의 옷을 벗었다. 그동안 열한번 연속 당선됐고 94년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이 40년만에 처음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공으로 하원의장에 오른 그는 클린턴 행정부를 견제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95년 예산동결로 며칠동안이나 연방정부 업무를 정지시켰고 최근엔 클린턴 성추문 공격을 지휘했다.
▼그를 미국 보수층의 대변자로 올려 놓은 것은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캐치프레이즈였다. 개인과 기업활동에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발적 인센티브를 끌어내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는 정책노선이다. 중도좌파 노선인 ‘제3의 길’이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에 해당한다. 그러나 ‘포스트 잇’(접착식 메모지)을 발명한 미국시민의 창의력이 국가위상 중흥의 원동력이라는 그의 열변은 큰 갈채를 받았다.
▼고향에 돌아간 깅리치의 귀거래사 또한 인상적이다. 새 리더의 성장에 자신이 장애가 될 수 없다는 발언은 감동을 준다. 또 조국과 당에 봉사한 경력을 귀하게 간직하겠다는 말에는 보수주의자의 뼈대가 엿보인다. 미국인이 가장 혐오하는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했던 그이지만 깨끗한 퇴진으로 언론의 박수를 받았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진실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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