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韓-日」좌담회]경협-신뢰회복 새동반관계를

  • 입력 1998년 10월 6일 19시 2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맞춰 동아일보와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은 한일 양국의 정치인 경제전문가 학자를 초청해 9월28일 도쿄(東京)에서 공동 좌담회를 가졌다.참석자들은 한국 및 아시아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과 경제회복정책 시행이 긴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양국 참석자들은 특히 “경제회복에 양국의 긴요한 협력이 시급히 필요하며 21세기를 향해 양국이 새로운 협력과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함께 했다.》

[참석자=다케미 게이조(무견경삼·외무성정무차관·참의원) 와다 하루키(화전춘수·도쿄대사회과학연구소소장)후카가와 유키코(심천유기자·아오야마학원대 조교수)김근태(국민회의 부총재)이기택(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소장) 사회=다나카 나오키(전중직의·21세기정책연구소이사장)]▼한국 경제위기와 협력▼

사회〓일본과 한국은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우선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부터 좌담을 시작할까요.

이한구〓한국경제는 일종의 악순환에 처해 있습니다. 외화위기로 원화가치가 떨어졌고 금융기관과 외화를 소비하는 대기업의 부채문제로 연결됐습니다. 실업자 급증으로 사회가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실물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지만 한국만의 노력으로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후카가와〓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닌지요. 김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면 구조조정이 계속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요.

이한구〓당면한 문제에만 한정한다면 국제통화기금(IMF)프로그램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IMF프로그램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분담한 뒤 어느 정도의 과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또 정치에 의한 은행지배나 은행에 의한 기업지배가 나오면 경제적 효율의 문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근태〓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민주화로 각자가 자신의 이해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특히 사회복지가 취약해 실업문제가 사회적 정치적 불안으로 증폭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케미〓전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일본정치의 혼란을 초래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기택〓IMF프로그램은 사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정책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 있는데 현재 정치 군사 사회 국민심리의 재편성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한구〓위기극복을 위해서는 IMF프로그램에 따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서구식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의견과 아시아식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충돌을 빚기도 합니다.

후카가와〓IMF의 서구식 구조조정에 대해 일본에도 상당한 반대의견이 있습니다. 다만 일본은 자본주의 국가로는 아직 젊은 편이고 한국은 더욱 젊습니다. 성장가능성의 희생없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한국이 시도하는 구조조정이 정말로 강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 방황하는 단계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한구〓한국인은 IMF식 구조조정이 경제기반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대량해고는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붕괴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충격흡수장치를 갖춰야 하는데 불행히 외화가 없습니다. 지금은 IMF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적지 않은 산업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후카가와〓IMF에 반발하는 말레이시아에 대해 일본은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만약 일본이 한국에 이렇게 할 경우 한국은 ‘서구식이 좋다’며 거부하지 않을까요.

다케미〓일본모델에 대한 집착을 한국인이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종래의 고전적인 일본모델은 이미 일본에는 없고 이를 떠받치던 가치관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와다〓IMF를 일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각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IMF조언이 틀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러시아인의 잘못으로 실패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둘다 문제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일본은 지역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제 지역문제 및 세계문제에 공헌한다는 책임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사회〓일본의 직접적 관여가 이만큼 요청된 때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다케미〓일본은 아시아 경제회생을 위해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일본 자신이 심각한 경제상황이지만 한국경제를 돕기 위한 정책을 실시한 것도 아시아경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김근태〓한국의 경제적 곤란은 아시아 및 일본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공통의 문제인 만큼 양국이 함께 논의하기를 기대합니다.

후카가와〓앞으로 한일관계 개선은 경제문제가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요. 정치나 외교는 제로섬 게임이지만 경제는 플러스섬이 가능하니까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제는 효율과 경쟁력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므로 결말이 나지 않는 역사문제보다도 서로가 일체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김근태〓경제문제를 양국간 해결의 열쇠로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일본은 경제수준이 높고 힘도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경제 전체와 직간접적으로도 연결되는 일본이 결단을 해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對北위기와 안보문제▼

사회〓안전보장과 관련해 북한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김근태〓북한의 미사일(인공위성)발사로 일본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분단된 땅에 사는 한국국민, 나아가 한반도의 7천만명은 과거 50여년간 그런 충격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야말로 안전보장의 핵심입니다.

이기택〓한반도에는 60년대부터 서울에 도달하는 북한의 미사일이 배치됐습니다. 일본인이 깜짝 놀랐다는 사실에 한국인이 놀랐습니다. 얼마나 한반도 상황을 모르고 있는지…. 한국과 미국이 있으니까 냉전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까요.

다케미〓그러나 사전 경고없이 타국에 위협을 주는 행위가 허용돼서는 안됩니다. 일방적인 위협을 주면서 상대방과 타협하려 하는 북한의 협상패턴을 단절해야 합니다. 한미일간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김대통령은 취임이래 북한에 대해 ‘바람보다 햇볕(태양)’이라는 정책을 취해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체제는 김대통령이 기대한 것처럼 대응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김근태〓‘햇볕정책’이란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사용한 말이지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최후의 냉전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는 긴장완화정책이 실효성이 있습니다.

와다〓북한이 실제 군사행동을 할 힘이 없다 해도 일본까지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표명한 것은 대단히 현명합니다. 중요한 점은 북한경제가 붕괴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을 피하는 것입니다. 일―조(日―朝)협상을 재개해 설득하고 압력을 넣어 이를 방지해야 합니다.

▼韓-日 과거사 청산▼

사회〓한일간에는 ‘과거 인식’이라는 극복되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다케미〓김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확실히 반성하고 말로 표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근태〓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이 대등한 파트너로서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양국의 새로운 관계는 동북아시아 리더십면에서 세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생산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역사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는 일본정부가 주체적으로 실행해야 하며 스스로 성의와 용기를 갖고 결단을 내리기 바랍니다. 과거는 미래의 초석입니다. 종전처럼 총리의 발언 후 다른 말이 나오는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지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이기택〓독일은 일찍이 과거사를 사과하고 반나치정책을 취했지만 일본은 조금씩밖에 움직이지 않았고 표현도 알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추상적인 협상이 되기 쉽지만 중요한 의제이며 이번엔 상당한 진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문화 개방은 한국의 문제로 원칙적으로 개방하자는 방향입니다.

와다〓공동으로 노력해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전제로서 과거에 대한 반성 사죄 보상이 필요합니다. 호소카와전총리 발언과 무라야마전총리 담화로 일본정부의 태도가 크게 변했습니다. 저는 최소한의 전제는 됐다고 보며 이를 일본이 명료하게 전달하고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후카가와〓한국측이 사용해온 과거청산 카드를 재고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청산 문제가 발생했으며 이를 되풀이함으로써 한국이 얻은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동반자관계▼

이한구〓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국제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반일감정은 극복돼야 합니다. 이는 한국을 위한 것입니다. 일본에는 과거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중요한 점은 반성의 정도와 속도입니다. 일본이 경제력을 갖고 있으면서 불경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정부가 신속한 대응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의 관계도 신속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다케미〓국가간 상호이해와 우호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제도로 보장되는 자유와 책임 안에서 이뤄지는 자연스런 교류여야 합니다. 이 안에서 같은 아시아지역에 공존한다는 연대의식이 국민간에 싹트고 중국 동남아인을 포함한 연대감이 움트는 것이 21세기 아시아에 있어 대단히 소중합니다.

사회〓아시아는 일본에 대해 기름을 넣어주는 ‘급유차’를 넘어 ‘견인차’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비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인근 국가들은 지금 당황하고 있습니다.

김근태〓일본의 견인차 역할이라는 표현은 일본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지배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위화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 나아가 아시아 각국과 함께 대등하고 투명한 관계를 바탕으로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김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새로운 세기를 향해 굳건한 한일관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정리·도쿄〓윤상삼·권순활특파원〉yoon33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