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국민의 정부 ④]고용안정은 언제쯤…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집권하면 실업(失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6개월간 해고중지를 시키겠다”고 약속했던 김대중(金大中)후보. 그가 40년 야당정치인의 한을 풀고 청와대에 입성한 요즈음 1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와 수백만명의 그 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실업자 93만4천명, 실업률 4.5%. 1월중 통계청 공식집계다. 한달사이에 새로 실업자가 된 사람이 무려 27만6천명.더구나 본격적인 경제구조조정과 대기업의 정리해고제 시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사태 시작때부터 예견됐던 대량 실업사태가 당초 우려보다 훨씬 빨리, 훨씬 대규모로 닥쳐오고 있는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이미 올해 실업률 전망치를 당초의 5%내외에서 5.7(LG경제연구원)∼6.3%(대우경제연구소)로 높였다.

만약 실업률이 6%가 되면 최소한 30만5천명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더구나 공식적인 실업률 집계방식에 감춰져 있는 허점을 감안하면 실제 실업자는 통계보다 수십만명 이상 많다.

통계청은 3만3천가구를 표본으로 선정, 그중에서 ‘취업할 의사가 있는데도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경우’에만 실직자로 집계한다. 자존심 때문에 “몸이 피곤해서 쉬고 있어요” “어차피 일자리가 없을 테니 집에서 쉴래요(실망실업)” “사촌형네 가게에서 지난 목요일 두어시간 도와줬어요(취업)”라고 대답하면 모두 실업자 집계에서 제외된다. 통계의 느슨한 그물망 사이로 상당수 실업자가 집계에서 제외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다섯 가구에 한집꼴로 가계 수입원이 끊기는 사태가 현실로 다가와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실업률의 회복은 실물 경기회복보다 6,7개월 늦게야 이뤄진다. 설령 김대통령이 자신한 대로 내년하반기내에 IMF를 극복하고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든다 해도 한동안은 실업사태가 계속 악화돼 결국 김대통령의 임기중 상당기간이 대량실업시대와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김대통령은 당선 후 두달여동안 고용문제에 대해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헌법개정보다 훨씬 어렵다’는 노사정(勞使政)대타협을 이뤄냈다. 하지만 노조가 약한 중소기업과 부실 부문에서 대부분 발생한 지금까지의 감원과 달리 앞으로 대기업에서 정리해고가 본격화하면 노동계의 반발강도는 훨씬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노사정 대타협 당시 정부와 사용자측이 정리해고제 남용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벌써 일터에선 “감원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남발되고 있는데도 해고를 막기위한 정부의 노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민주노총 간부)”는 분노에 찬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노동계가 고통분담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던 재벌과 공공부문, 정치권개혁 등이 흐지부지될 경우 대규모 노사분규와 사회불안이 야기될 우려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업대책의 실천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대통령은 정보산업과 지식산업 분야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 매년 50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용보험 재원도 5조원으로 확충키로 했다. 그러나 과거 고용이 불안할 때마다 요란한 실업대책이 쏟아져 나왔다가도 실제 실천단계에선 부처이기주의와 경제투자 우선주의에 밀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심지어 노동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이 실업문제에 끝까지 변함없는 관심과 열정을 쏟지 않으면 실행단계에서 장벽에 부닥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 실직사태의 특징중 하나는 기능직 단순직 근로자 위주인 서구의 실업과 달리 재취업(轉職)이 어려운 고학력 사무직 근로자들이 대거 희생되고 있다는 점. 이들에게 실직은 단순한 생계수단의 박탈을 넘어 인생설계 자체가 뿌리째 뽑히는 아픔이다.

한국노총 최대열국장은 “지금 실직자 개개인이 받고 있는 고통은 김대통령이 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정치인으로서의 모든 걸 빼앗겼던 당시의 아픔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것임을 김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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