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이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제15대 정부가 공식출범한다. 김당선자는 대선기간에 여러가지 국정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인해 상당수 장밋빛 공약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김대중정권의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일부 공약은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정권 첫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부문별로 전망해 본다.》
▼ 정치 ▼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하는 새해 정치환경은 객관적으로 썩 좋은 것은 아니다.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에도 불구하고 ‘신(新)여소야대’ 정국구도는 깨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김당선자가 거듭 화해와 단결을 강조하며 ‘거대 야당’에 유화제스처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김당선자는 선거 다음날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적으로는 국민적 화해와 단결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역설했다. 선거결과 드러난 ‘동서(東西)분할구도’를 치유하겠다는 뜻이자 정치적으로는 ‘야당 껴안기’를 통해 난국을 헤쳐나가겠다는 의미다.
김당선자가 당선하자 마자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을 직접 방문, 이회창(李會昌) 이인제(李仁濟)씨에게 대승적 협조를 당부한 것은 바로 그같은 화해시도였다.
또 최종현(崔鍾賢)회장 등 전경련 회장단에 “야당도 국가를 위해 필요한 기관이며 돈이 있어야 건설적으로 운영된다”며 야당에도 정치자금을 주라고 ‘부탁’한 것이나 한나라당 등 야당에 국민회의 자민련과 같은 비율의 각료를 배정, 실질적 ‘거국내각’을 구성하겠다는 복안도 마찬가지다.
김당선자는 그러나 야당과의 거국적 협력구도가 여의치 않을 경우 대국민 설득을 통한 ‘압박전략’으로 정국을 끌고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당선자는 이미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연 2회 이상 실천하겠다”며 “국민 여러분의 의견과 요구를 직접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정계개편 문제도 예민한 관심사 중 하나. 김당선자 진영의 분위기는 “인위적인 정계개편이야 시도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 일부 관측처럼 김당선자가 5월 지방선거 직후 당총재직을 내놓고 ‘동서화합형’인물을 당 간판으로 내세우려 한다면 정계개편은 ‘실제상황’이 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구여권인사를 새 총재로 삼을 경우 그 지지세력을 한꺼번에 흡인하는 효과를 볼 수 있고 그 경우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 박태준(朴泰俊)총재가 움직이는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김당선자의 명분은 ‘화해와 단결’일 것이다. 〈김창혁기자〉
▼ 경제 ▼
김대중당선자의 경제정책은 ‘IMF체제 조기극복과 세계 5강 경제 진입을 위한 기반 조성’이 그 목표다.
먼저 IMF체제 극복방법은 ‘허리띠 졸라매기’와 ‘국가 경쟁력 강화’로 요약된다. 정부 예산부터 깎고 각종 사업도 축소해 쓰임새를 대폭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실시해 기업의 역량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물론 이런 정책은 정부가 IMF측에 약속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에 맞춰 추진된다. 국내시장개방과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기업의 인수합병(M&A)절차 간소화 등은 이미 세부 일정까지 확정해 놓은 상태다.
이 프로그램대로라면 한동안 달러의 국내 유입은 크게 늘겠지만 적지않은 국내기업의 경영권이 줄줄이 외국자본에 넘어갈 전망이다. 김당선자가 최근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오면 결과적으로 좋은 점도 많다. 외국자본을 기피하는 기존의 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재벌구도의 변화도 가속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미 IMF에 △기업지배구조 변화 △빚경영 청산 △결합재무제표 작성 △경영투명성 제고 등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재벌기업이 분산되고 ‘오너 마음대로’ 하던 경영풍조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김당선자가 선거전 약속했던 수많은 공약과 의욕적인 사업들은 실현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정부예산을 7조원 정도 감축할 예정이다. 경부고속전철 등 굵직한 국책사업들은 벌써부터 ‘전면재검토’의 도마에 올랐다. 농민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던 농가부채 대폭 감면 공약 역시 실현이 불투명하다.
이밖에 ‘물가상승률 3% 억제’ ‘2000년대 초반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2년반 동안 벤처산업에만 1백만명 일자리 창출’ 등도 목표치를 대폭 수정해야 할 처지다.〈송인수기자〉
▼ 외교 ▼
김대중당선자의 외교노선은 주변의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과의적극적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기조 유지가 핵심이다.
김당선자는 주변 4강 중에서도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의 친미(親美)노선은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세계 최강국 미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용미론(用美論)’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킴으로써 북한의 위협도 막으면서 중국과 일본까지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김당선자의 외교개념은 ‘안보’라는 전통적 범주를 뛰어넘어 경제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특히 IMF관리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IMF에 영향력이 큰 미국과 일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대선기간에 “당선하면 미국과 일본을 방문, 경제외교를 펼치겠다”고 거듭 다짐한 것도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를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당선자의 미국 및 일본 방문은 이달 중순 경제사절단 파견에 이어 취임 직후 이뤄질 전망이다.
김당선자는 두 나라를 방문,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정계인사들에게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고 뉴욕 월가(街)의 투자자들과도 만나 ‘세일즈 외교’를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북―미, 북―일간 수교협상이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활동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당선자는 북한에 대해서는 “민족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노선’을 천명하고,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마찰을 빚어온 독도 영유권 문제는 ‘단호히 대처하되, 긁어서 문제를 키우지 않는’ 실리외교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반도에 위기상황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한을 억제하는 ‘힘’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김당선자의 대중(對中) 정책기조다.
김당선자의 한 측근은 “김당선자는 첫째도 실리, 둘째도 실리의 차원에서 대외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윤영찬기자〉
▼ 사회 ▼
김대중당선자의 사회분야 국정지표는 ‘각종 차별의 철폐’로 요약된다.
그는 그동안 서민의 권익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IMF한파로 인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복지정책은 상당기간 유보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당장은 경제사정 악화와 기업도산에 따른 대량실업사태가 가정과 직장 등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 실업대책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당선자는 경제회생을 위해 정리해고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기존 입장을 바꾼 상황이어서 연초부터 예상되는 정부와 노동계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김당선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참여를 보장하는 등 노조의 권리를 확대하고 고용안정기금 확충, 재취업기회 확대 등의 방안으로 노동계를 달래며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상되는 경제상황에 비춰 △교육예산의 GNP 6% 확보 △교원처우 개선 △무상교육 확대 △경로연금제 확대 등 많은 재원이 들어가는 사업은 2000년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교육비는 대선 전에 약속한대로 임금동결과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강력하게 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당선자는 IMF구제금융기간에 학원수강을 제외한 입시과외를 전면금지하고 각급학교의 등록금도 동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함께 지역차별을 해소하고 지방의 균등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인재지역할당제’를 시행함으로써 사회 각 분야의 인맥 및 학연중심 구조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교통정책은 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 중심으로 재편하고, 환경정책은 그린벨트 재조정과 물관리체계의 개선 등을 공약했지만 당장 대규모 투자는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훈기자〉
▼ 문화 ▼
김대중당선자의 문화예술정책은 한마디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화부 독립과 지원확대, 검열 철폐, 창작활동의 자율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작활동에 대한 검열은 원칙적으로 폐지되고 검열을 하더라도 관(官)주도가 아닌 민간기구의 자율심의로 전환할 것이 예상된다. 문화예술계에서 당장 소설가 황석영(黃晳暎)씨 등의 석방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때문이다.
김당선자는 특히 문화가 과거처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대표적인 고부가가치산업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는 “21세기는 경제와 문화의 시대”라고 주장하며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 한 편이 자동차 1백만대 수출과 맞먹는 이득을 올렸다는 사례를 즐겨 사용했다. 우선 영화진흥기금을 5백억원 이상 확보하겠다는 공약의 실천여부가 주목된다.
문화부 독립과 공보처 폐지는 당장 새 정부의 행정조직 개편구상과 맞물려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교육방송공사 설립, 서울신문과 연합통신의 독립성 보장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00년까지 정부예산의 1%이상을 문화예산으로 확보한다거나 2005년까지 관광진흥기금을 1조원 이상 조성하겠다는 공약은 IMF체제하에서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성과 청년분야를 우대하겠다는 공약은 새 정부 첫 인사에서 실천의지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버지의 권리가 어머니의 권리와 같고, 아들의 권리가 딸의 권리와 같아야 한다” “노―장―청(老―壯―靑) 세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김당선자의 지론은 행정부 각료인사 등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과 45세 이하 청장년중에서 각각 4명 이상을 국무위원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각종 선거의 비례대표와 행정부 및 정당의 여성참여 비율을 30%이상으로, 정부정책 자문기구에 청년참여 비율을 30%이상으로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여성부의 신설이나 각종 여성고용정책, 아동복지정책 등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기본정책에 어긋나고 IMF체제라는 특수상황과 맞물려 실천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