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은폐 경제책임자 문책여론…『무능에 거짓말까지』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3분


정부가 3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주권을 넘기는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한 것을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선 국가파산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해외여행 유학 등 국민들의 과소비를 지적, 국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경제주권 상실의 결정적 원인은 청와대와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 당국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빗나간 정책대응 및 진실의 은폐와 축소조작에 있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4일 재경원과 한은에 따르면 외환보유고 가운데 60% 이상이 바로 현금화할 수 없는 용도에 운용돼 외환위기에 무방비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10월말 현재의 외환보유고는 3백5억달러였지만 미국 재무부 단기증권(TB) 등 유동성과 안전성을 갖춘 자산에 보관된 금액은 1백억달러에 불과했던 것. 나머지 2백여억달러는 은행 종합금융사 등 국내금융기관 해외현지법인에 대출,사실상 부실채권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고는 국가의 최후자산이므로 유동성과 안전성을 고려해 관리해야 하는데도 재경원의 요구로 금싸라기 같은 외환보유고를 부실금융기관에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보유고 관리의 공동책임을 져온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와 이경식(李經植)한은총재는 지금껏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경원과 한은은 대외적으로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등 기초여건이 좋은데다 외환보유고도 3백억달러를 넘는 만큼 외환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입을 맞춰왔다. 한은 내에서는 11월초부터 『달러가 말라간다. IMF 구제금융이 시급하다』는 말들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한은은 11월21일의 구제금융신청 직전까지 국민들에게 『경제의 기초여건이 튼튼하므로 동남아와 같은 외환사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더욱이 재경원은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데도 『달러를 무제한 방출해 환율을 잡겠다. 지금 달러를 사는 사람은 큰 손해를 볼 것』이라며 무책임한 「개입 엄포」를 반복했다. 한국금융연구원 현대경제사회연구원 등 주요 연구기관은 이미 지난 4월1일 『경상수지적자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사태가 발생, 대외채무 지불에 문제가 생기는 외환위기의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강전부총리 등 재경원측은 이들 연구소에 『헛소리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기에 바빴다. 정부는 각계의 위기신호를 원천 봉쇄하고 외환보유고 등 관련정보를 은폐 조작하는데 급급했던 것. 특히 강前부총리는 지난달 19일 인책사퇴하기 직전까지도 『경제의 기초여건이 튼튼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퇴임식에서 『홍콩의 금융불안이 우리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는 엉뚱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퇴임 이틀전인 지난달 17일에는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비밀리에 구제금융 협상을 벌였던 것.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강전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전청와대 경제수석의 낙관론에만 의존,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남덕우(南悳祐) 전국무총리 등 각계 원로들이 경제위기를 경고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강전부총리 등의 사실 은폐 축소 및 대책 표류를 방치했던 것으로 지적된다. 〈윤희상·임규진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