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DO대표단이 본 北]한국車 처음본 北주민 충격

  • 입력 1997년 8월 21일 20시 32분


텅빈 부두와 녹슨 10여척의 크고 작은 철선, 희뿌옇게 색이 바랜 건물들, 잡초가 무성한 가파른 야산, 그리고 항구 곳곳에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새긴 충성을 강요하는 구호들. 19일 오전 7시경. 동해항을 떠난 지 12시간만에 보슬비와 안개속에서 어렴풋이 나타난 북한 땅의 모습이었다. 함경남도 금호지구 경수로부지와 12㎞정도 떨어진 양화항. KEDO대표단을 태운 한나라호가 항구에 접안할 때쯤 부두에는 한참 붐빌 시간이었는데도 북한 사람들은 안전요원과 세관원 등 십여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친 대표단은 곧 음료와 담배 등을 파는 외화벌이 상점인 「양화카운트」 여점원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는 상냥한 인사를 받았다. 이어 대표단이 진흙탕 비포장도로를 30분간 달려 도착한 공사현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넓은 들판과 어인봉이라는 야산이 있는 허허벌판. 그렇지만 현장 곳곳에 육중한 모습으로 서 있는 중장비에 찍힌 「현대」 「대우」의 선명한 영문 로고와 각종 국산 차량이 오가는 장면은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난달말 이곳 금호지구에 도착한 한 관계자는 『우리 기술자들이 북한땅에서 국산 차량이나 장비를 몰고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뿌듯하다』며 『북한주민들에게 상당한 상징적 의미와 문화적 충격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념리셉션이 열린 강상리 「게스트하우스」는 『이곳이 과연 북한땅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한마디로 부지내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북한 외화벌이 상점에서는 북한 노동자들과 맥주를 함께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 우리 기술자 몇 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숙소가 들어설 부지옆에는 평양 옥류관 신포분점과 외화벌이상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경수로사업을 계기로 외화벌이를 위해 설치된 것이다. 북한의 조심스런 자본주의 실험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북한 함남 금호지구〓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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