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표 계보활동 경고]黨紀확립 「회초리」들어

  • 입력 1997년 8월 11일 21시 05분


대통령후보 경선 후 20여일 동안 당내 갈등양상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과 대책없이 지켜보던 신한국당의 李會昌(이회창)대표가 드디어 「이회창식 처방」을 가시화시키고 나섰다. 이대표는 11일 당내 계보활동에 대해 분명하게 경고하는 한편 『이번 대선은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대리전이 아니라 「이회창」이라는 새로운 구도로 치르는 것』이라며 김대통령과의 차별화 문제까지 거론했다. 이날 이대표가 「당기(黨紀)잡기」에 나선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더이상 당내 상황을 수수방관하다가는 「외환(外患)」은 고사하고 「내우(內憂)」 때문에 낭패를 볼는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듯하다. 실제로 李漢東(이한동) 李壽成(이수성)고문 金德龍(김덕룡)의원 李仁濟(이인제)경기지사 등은 이대표의 대선캠프 진용구성과는 아무 관계없이 제각기 경선 당시 자파 위원장들을 중심으로 연구모임 등을 결성, 계보활동을 공공연하게 선언해왔다. 특히 이지사의 독자출마설, 이한동고문의 야권연대설 등은 이대표 아들들의 병역면제 파문에 따른 이대표의 인기하락과 맞물리면서 당내에 작지 않은 불안감을 조성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당직자들은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걸거나 문제제기를 하기는커녕 「강건너 불 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자세를 보여왔다. 그렇다고 진영 내부가 「한 식구」로 정리된 것도 아니었다. 경선 때 지지세력의 주축이었던 金潤煥(김윤환)고문계는 그들대로 불만을 드러내는 형편이다. 이대표 측근들도 최근 『현상황에서 계파안배식 화합에 치중하는 것은 죽도 밥도 아닌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며 『조속히 「이회창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대표가 이날 내놓은 처방은 「고육책」이자 일종의 「통첩」이라는 성격이 짙다. 문제는 이러한 「강수(强手)」들이 가져올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이대표 아들들의 병역문제 등에 대한 야당의 공격카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불씨다. 이대표의 이날 강성발언에 대해서도 당내 반응은 떨떠름해 하는 것 같다. 〈이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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