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정치개혁특위 同數수용 안팎]『李대표 왜 이러나』

  • 입력 1997년 7월 31일 20시 57분


신한국당이 30일 고비용정치구조개선 특위의 「여야 동수 구성」을 전격 수용하자 당소속 의원 가운데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31일 열린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도 이같은 불만토로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경기 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지구당에 가서 동수특위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바뀌니 내가 뭐가 되느냐』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또 『원칙이 없다. 아들의 병역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李會昌(이회창)대표가 국면전환을 하려한 것 같다』(한 전국구의원) 『갑자기 의원총회를 열더니 일방적으로 수용방침을 통보하다시피 했다. 바로 이게 이대표가 말하는 당내 민주화냐』(한 서울지역 의원)등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사실 30일 오전까지도 朴熺太(박희태)총무는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었다. 그러다가 이대표가 전격적으로 야측 주장을 받아들이자 당지도부는 『고육책을 쓰면서도 민생법안을 처리하려는 이대표의 순수한 결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속사정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30일 낮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총무협상이 결렬되자 河舜鳳(하순봉)대표비서실장을 비롯한 이대표의 핵심측근들은 대책을 협의했다. 측근들은 「민생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대표가 고스란히 부담을 안게 된다.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민생국회를 실종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 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는 것. 이렇게 결론이 나자 하실장은 국회에서 朴寬用(박관용)사무총장과 박총무를 비밀리에 만나 설득을 벌였는데 박총장이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 의견 조율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표의 판단에 따르자」고 의견을 모았고 하실장은 즉각 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야측 주장을 수용하자는 결심을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박총무는 청남대로 전화를 걸어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의사를 타진, 『대표와 당지도부가 알아서 하라』는 답을 얻어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이날 신한국당의 극적인 방향 전환은 이대표와 핵심측근들의 「드라이브」의 결과인 셈이다. 사실 이대표 진영에서는 임시국회가 이대표 아들의 병역문제로 파행을 계속하는 데 대한 부담감을 상당히 느껴왔다. 이대표의 한 측근은 30일 오전부터 『어떻게 해야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릴까. 야측 주장을 받아들이면 어떨까』라며 애드벌룬을 띄우기도 했다. 아무튼 급박했던 30일의 신한국당 움직임은 경선 이후 여권내 권력이동을 실감케 한 「단면」임에 틀림없었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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