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첫 자유경선 결과]「黨內민주화」싹은 틔웠지만…

  • 입력 1997년 7월 21일 19시 24분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열전(熱戰) 23일간의 막을 내렸다. 여당 사상 최초로 실질적 자유경선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경선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이번 경선이 남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측면을 점검해본다. ▼민주적이고 공정한 경선이었나〓「대의원 직접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줄세우기와 줄서기가 난무한 저질경선이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상당한 세를 확보한 후보들이 위원장은 물론 대의원들을 상대로 「줄세우기」 경쟁에 나서면서 후보들간의 정책대결은 「공염불」로 끝났다. 합동연설회 중반 이후부터 위원장들에 의한 대의원 단속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게 「당심(黨心)」에서 열세를 보인 일부 후보들의 술회다. ▼고비용정치 개선됐나〓대부분 후보들이 선거운동 캠프와 별도로 각종 연구소 등 사조직을 운영하는 등 상당한 자금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후보 거의 모두가 수십명의 상근요원에다 1백평 안팎의 주 캠프 사무실 외에 정책개발팀 사조직팀 등이 사용하는 비선(秘線)사무실까지 몇개씩 두고 경선운동을 해왔다. 막대한 활동비가 후보 개인이나 후보와 인연이 있는 기업체에서 나왔음은 물론이다. ▼화합과 축제분위기였나〓초반부터 조성된 과열혼탁상은 금품살포설 괴문서유포 흑색선전 등으로 경선후유증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지경으로 만들었다. 「이수성 가계 특성」 「이회창 대해부」라는 괴문서와 경선 막바지에 이인제후보 비방유인물이 대량 살포된 것과 朴燦鍾(박찬종)후보가 이회창후보측의 금품살포설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더욱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린 지역주의의 망령이 이번 경선에서도 재현됐다는 점이다. 각 후보들이 입으로는 한결같이 「지역주의 청산」을 외치면서도 막상 합동연설회에서는 지역주의를 부채질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태도를 보였다. ▼개선 의견〓우선 당 선관위의 기능 보완과 권한 강화 등을 통해 과열혼탁상을 방지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 합동연설회를 12차례나 개최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특히 언론기관에 의한 후보 합동토론회가 무산된 것도 정책선거를 실종시킨 요인으로 꼽혔다. 20분짜리 합동연설회로는 후보 자질검증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최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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