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권 대선주자들의 혼탁한 돈선거 및 흑색선전이 또다시 우려를 낳고 있다. 나는 그들이 자기 돈 써가며 스스로 감옥에 보내달라고 하는 미결수같이 보인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지난 92년 대선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느낀 대통령 선거의 문제점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우리 국민이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면서 대통령후보의 최측근에서 야당선거와 여당선거를 치러본 유일한 인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고백해 공정한 대선이 치러지게 하는 길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느꼈다.
나도 나이가 벌써 46세다. 진보보다는 보수세력일 수밖에 없고 변화보다는 안정을 희구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나의 고백이 결코 정국안정을 해치거나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다. 따라서 지금도 말못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金泳三(김영삼)후보 선거운동에 나섰던 우리는 당시 밤마다 다음날 모임에 모일 사람에게 나눠줄 1인당3백만원씩을 봉투에 넣기 바빴다. 내가 참석한 모임만 하루 10∼15회. 모임은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 때로 미리 1억원짜리 수표들을 1백만원권으로 바꾸지 못하면 은행문이 닫혀있는 시간에도 은행에 협조를 구해 바꿨다.
우리가 92년대선당시마음대로 돈을 뿌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보였다. 지금 온 국민이 대선자금을 문제삼는데 나는 돈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만약 똑같은 돈을 야당과 여당에 줬어도 여당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반해 야당은 돈을 쓸 수가 없게 돼 있다.
여당은 돈을 써도 적발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선거로 처벌받을 우려가 없다. 우리는 92년 선거 당시 경찰 등에서 각종 정보를 수시로 보고받았다. 여당후보의 사설경호원들은 청와대경호원과 동일한 엄지손톱 크기의 마이크를 와이셔츠 소매 속에 숨겨놓은 채 경찰 등과 긴밀한 협조하에서 기자나 선관위원들이 나타나는 것을 즉시 보고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연락이 오면 돈뿌리는 것을 중단하고 행사목적도 바로 바꿀 수 있었다. 식사를 하다가도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으로부터 『떴다』라는 연락이 오면 우리는 바로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 마시는 다과회로 바꿨고, 잠시후에 비디오카메라를 든 선관위관계자는 아무 문제없는 우리의 간담회 장면만 촬영하고 갔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 그것에 익숙해져 그런 일쯤은 능숙하고도 순식간에 바꿔칠 수 있었다. 행사장은 항시 여당후원회 회원이거나 친여인사들이 제공한 장소였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협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야당이 여당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바로 이 정보독점 때문이다.
집권가능성이 많은 여당후보가 되자 모든 사람들이 우리 편으로 몰려들었다. 공무원들도 음으로 양으로 여당후보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공직에 있으면서 노골적으로 행사장 등에 나타나서 편의를 제공한 사람도 있고 자신의 부인을 보낸 고위공직자도 있었다.
우리는 민심조차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선거일인 12월18일은 더하면 30이 되고 이를 뒤집으면 03(영삼)이니 김영삼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요 뜻이라는 식으로 여론을 유도하라고 했다.
기자들의 태도도 달랐다. 야당시절 그렇게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청와대입성 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노골적으로 부탁했다. 그들의 기사가 우리에게 유리할 것은 자명했다. 누구보다도 중립성을 지켜야할 언론조차도 여당후보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TV가 여권의 손 안에 있는 한 야당후보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TV의 공정성은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김대통령은 대선자금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 공개하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여권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방대한 조직의 특성상 돈을 관리하는 곳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밑에서 김대통령 몰래 돈을 개인적으로 쓰고 나중에 어디서 얼마 받아 썼다고 해도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자금 규모의 추산은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김대통령에게 하나 아쉬운 점은 아직도 측근의 부패세력을 척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金賢哲(김현철)씨를 등에 업고 1년에 1급씩 진급한 청와대의 고위공직자 등이 있는 한 누가 열심히 일하고 싶겠는가. 그리고 모씨처럼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기업체에서만 수백억원의 돈을 모금하러 다니고 곳곳에 자기 사람 심기에 바쁜 자가 측근으로 있는 한 아무리 깨끗한 정부를 주장해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아울러 나는 이번 기회에 제왕적인 대통령제의 폐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아직 절대권력자 앞에서 똑바로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사람을 못봤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직언이 나오겠는가.
나의 이번 증언은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으며 내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소중한 경험을 국민과 더불어 나눔으로써 다시는 선거자금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경제가 수렁을 헤매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이뤄진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