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로세우자⑥]「백만명집회」勢싸움…수백억 꿀꺽

  • 입력 1997년 6월 10일 20시 22분


여름이 거의 끝나는 8월말. 여야는 정치개혁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미련없이 협상을 중단한다. 더 이상 정치개혁에 매달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통합선거법으로 여야는 「죽기 살기」식 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다음은 현행 통합선거법으로 오는 12월18일 대통령선거를 치를 경우를 가상해 본 15대 대통령선거. 각 정당은 사실상 7월부터 「당원배가운동」에 들어갔다. 이른바 「철새 당원」 만들기에 들어간 것이다. 신한국당은 1천만명에 가까운 당원을 급조하려고 노력하고(92년 대선당시 민자당은 8백50만명의 당원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수백만명의 「가짜 당원」 확보에 당력을 모은다. 「철새 당원」을 붙들어 놓기 위해 각 정당은 2백37개 지구당에 수억원씩의 「실탄」을 내려보낸다. 여당의 경우 지구당마다 평균 5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한다(92년 대선 때 민자당은 수도권 7억, 호남 3억, 영남 5억원씩을 지원했고 막판에 수도권 90개 지구당에 추가로 3억원씩 평균 7억원을 지원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 지구당을 가동하는 데에만 2천억∼3천억원이 드는 셈이다. 통상 당무활동으로 불리는 15개 시도별 대선출정식에도 거금이 들어간다. 한번에 2만여명씩 참석하는 대선출정식에서 당원들에게 차비명목으로 5만원씩만 주더라도 식대와 대회준비 비용을 합해 수백억원이 필요하다. 야당도 규모는 이에 못미치지만 양태는 비슷하다. 각 후보가 전국 60여개 신문에 정책광고를 한번씩만 게재해도 1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여기에다 주간 특수신문 잡지 라디오 TV의 광고비와 각종 팜플렛 등 홍보유인물 제작 비용을 합하면 1천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다. 각종 홍보물을 가정으로 배달하는 우편비용만 해도 1백억원이상이 필요하다(92년 대선에서 민자당의 경우 홍보비로만 5백35억원을 썼다는 자료가 공개됐다). 11월26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야는 「돈먹는 공룡」인 각종 옥내외 정당연설회를 잇달아 열기 시작한다. 여야는 보라매공원이나 한강시민공원 등에서 경쟁적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다. 전국에서 청중을 동원하느라 난리법석을 떨며 「1백만명 참석」을 앞다퉈 홍보한다. 집회 참석자들에게 최소 5만원씩 일당을 주더라도 행사비용 등을 합해 5백억원이 훌쩍 넘는다.「보라매 공원을 1만원권으로 깔았다」는 얘기가 또 나온다. 부산 수영만이나 광주역 대전역광장 등 권역별로도 「필승 결의대회」라는 이름의 대규모 집회가 잇따라 열린다. 그때마다 일당과 교통비 식대 등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전국의 각 마을에서는 선심관광 등을 미끼로 공공연한 매표행위가 벌어지고 통반 단위로 「사랑방 좌담회」나 「당원교육」을 가장한 불법 탈법 선거운동도 판을 친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각 후보진영이나 시민단체에서 가동한 공명선거 감시단에는 「돈봉투」를 건네다 발각되는 사례도 속속 접수된다. 각 후보 진영간에 상대방의 불법 탈법 사례를 감시하다가 충돌하는 폭력사태도 빈발한다. 각종 이익집단이나 직능단체들의 극성스런 「후보유치경쟁」도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숱한 협회나 동창회, 하다못해 각 아파트의 부녀회에서 「잠시 들러 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한표가 아쉬운 후보들은 「돈봉투」를 들고 현장을 찾아간다. 각 후보 진영은 사조직운영비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여야 할 것 없이 한번에 수십대의 버스를 동원, 「일회용 회원」으로 가입한 유권자들을 「모시고」 연수라는 명목으로 설악산 속리산 제주도 등으로 향한다. 재벌들도 여전히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후보들에게 은밀하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제공한다. 「한보사건」으로 인해 돈거래의 양태는 자연히 더 은밀하고 치밀해진다. 온 나라가 열병을 앓듯 한바탕 난리를 치른 끝에 마침내 12월18일 투표가 끝나고 「대통령당선자」가 탄생한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다. 「돈선거」를 치른 후유증에 온 나라가 다시 몸살을 앓기 시작하고 국민의 정치혐오증은 더욱 깊어졌다. 또 다시 대선자금에 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수사와 「청문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연말 거리에서 대학생들의 화염병시위가 연일 계속된다. 〈최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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