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씨 사람」無籍근무 파문]청와대에 「두 대통령」

  • 입력 1997년 3월 21일 20시 10분


金賢哲(김현철)씨의 개인측근이 아무런 적(籍)도 없이 청와대 정무비서실에 근무한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 뒤 할말을 잃었다. 이같은 일은 과거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정권시절에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국정난맥상」의 표본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행정부처 군 경찰 등 여러 기관이 업무상 필요한 사람들을 파견할 때 신원조회기간 등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무적(無籍)상태로 근무하던 관행은 있었으나 이처럼 대통령의 가족이 자신의 심복을 자의(恣意)로 청와대에 근무시키는 등 사조직시(私組織視)한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 취임후 대선캠프 및 현철씨 사조직 멤버중 청와대비서실에 자리를 얻어 들어간 경우는 한두사람이 아니었다. 그 규모도 80년의 정변기(政變期) 때를 제외하고는 과거 정권 때보다 훨씬 컸다는 게 내부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의 얘기다. 현철씨가 관리해온 대표적 사조직중 92년 대선직후 청와대에 들어간 사람들은 주로 당시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의 청년사업단(청사단)과 언론대책반(언대반)멤버들이다. 작년 10월부터 청와대에서 무적으로 근무해온 것으로 들통이 난 鄭大喜(정대희·34)씨도 92년 대선 당시 나사본산하 청사단에 근무했던 핵심인물이다. 정씨는 대선 직후 현철씨의 핵심측근인 朴泰重(박태중)심우대표의 일을 잠시 돕다가 현철씨의 개인사무실인 서울 종로구 중학동 「미진빌딩」에서 현철씨의 수행비서 역할을 해왔다. 정씨는 작년 10월 청와대에 들어갈 당시 정식으로 5급행정관직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다』는 청와대의 내부반발에 부닥쳐 비서관진출이 좌절됐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측은 공보처 전문위원직으로 파견근무할 것을 제의했으나 정씨가 이를 거절, 무적근무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가 청와대에 들어갈 당시 같은 현철씨 측근인 崔東烈(최동렬)씨는 청와대 민원담당비서관(4급)에 별다른 문제없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도 대선 당시 청사단멤버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이들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유는 주로 신분과 활동내용을 극비에 부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언대반 멤버들도 「비밀활동」에 따른 신분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공보처 전문위원으로서 파견근무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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