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광내다보니 인생도 다시 반짝반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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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활기업 ‘워시마스터 강남점’ 4인
기초수급자 전락했다 일자리 얻어… 새벽부터 50여대 출장세차 구슬땀
수익금 공동저축… 세차장 독립 꿈꿔

대여 차량을 세차하고 있는 워시마스터 강남점 직원들. 이들은 매일 오전 이 같은 차량이 세워진 곳을 돌며 세차를 한다. 워시마스터 제공
대여 차량을 세차하고 있는 워시마스터 강남점 직원들. 이들은 매일 오전 이 같은 차량이 세워진 곳을 돌며 세차를 한다. 워시마스터 제공
매일 오전 5시 반 서울 강남구 ‘워시마스터’ 사무실 앞 주차장에서 세차용품을 실은 트럭이 시동을 건다. 운전자는 안진수 대표(57)다. 안 대표는 동료 3명을 차례로 태우고 강남구를 여기저기 누비며 자동차 광을 낸다. 자동차 한 대당 세차 시간은 15분 남짓. 대부분 물세차가 금지된 실내 주차장에선 물 한 방울 흘려서도 안 된다. 왁스 섞은 물을 헝겊에 묻혀 앞 유리부터 뒤꽁무니까지 차량 앞뒤로 바쁘게 움직이면 땀이 물처럼 흐른다. 50여 대를 닦고 오후 3시경에야 늦은 점심을 먹는다. 지난달 개업한 출장세차 자활기업 워시마스터 강남점의 하루다.

워시마스터는 서울광역자활센터의 도움을 받는 자활기업네트워크다. 2015년 공유자동차 대여업체 ‘쏘카’가 서울광역자활센터에 이동세차 사업을 제안했다. 이후 지난달까지 9개 자활이동세차업체가 문을 열었다. 기초생활수급자 32명이 번듯한 직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은 쏘카가 대여하는 차량 2000여 대의 세차를 도맡아 한다.

워시마스터 강남점에는 그중에서도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구두닦이, 일용직을 전전하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안 대표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지난 10년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딸만 셋인데 아이들 옷에 쥐가 오줌을 갈겨도 수도가 없어 빨래해 주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준영 씨(33)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프로 구단에 입단했지만 어깨 수술이 발목을 잡았다. 7년 만에 방출됐다. 상실감에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수급자가 됐다. 박균식 씨(63)와 박종인 씨(63)는 아내와 이혼한 후 혼자 살면서 삶이 무너졌다. 열심히 살았지만 몸이 아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2014년 강남지역자활지원센터에서 만났다. 모두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강해 금세 친해졌다. 겨울에는 언 손을 녹여가며, 여름에는 탈수 증세를 막으려 소금을 먹어가며 세차를 배웠다. 지난달 개업하면서 네 사람은 명함도 맞췄다. 평사원 없이 모두 대표, 부장으로 간부급이다.

워시마스터 강남점 월 매출은 1000만 원. 네 사람은 수익 가운데 96만 원씩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공동으로 저금한다. 3년 뒤 자활센터에서 독립해 워시마스터 세차장을 차리기 위해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 ‘주는 기쁨’을 누려보는 게 꿈이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 가정 아이들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다. 스스로 제대로 된 여가를 누리지 못한 아쉬움이 큰 때문이다. 땀에 전 작업복 차림으로 이들은 “꿈을 꼭 이루겠다”며 웃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워시마스터 강남점#강남지역자활지원센터#박균식#박종인#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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