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 곁에 잠든 ‘영원한 플레이보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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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 창간 휴 헤프너 별세
먼로 누드 실은 창간호 5만부 팔려… 토끼 로고 ‘성인문화 아이콘’으로
5년전 60세 연하와 세번째 결혼
“먼로 옆에 머무는 건 감미로운 일”… 1992년 구입 옆자리에 안장 예정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를 발행하는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는 창업자인 휴 헤프너가 2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1세.

20세기 성(性) 혁명의 기수로 불리는 그는 “성에 대한 위선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고 또 그렇게 하는 동안 많은 재미를 본 인물로 기억하기 바란다”는 자신의 묘비 문구를 직접 남겼다. 2003년 플레이보이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공개한 것으로 그의 묘비에 새겨질 예정이다.

고인의 아들 쿠퍼 씨는 “아버지는 언론의 자유, 시민권 및 성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회문화적 움직임의 선봉에 섰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대중 쾌락주의의 선지자’(타임), ‘미국 사회의 편협함으로부터의 탈출구’(뉴욕타임스), ‘1960년대 성 혁명을 이끈 인물’(로이터) 등으로 평가했다.

고인은 27세 때인 1953년 친구와 부모에게서 빌린 8000달러로 플레이보이를 창간했다. 당시는 “미국 유부남의 30∼45%, 유부녀의 29.6%가 혼외정사를 경험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킨제이 보고서’가 나와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때였다. 보고서를 쓴 앨프리드 킨제이가 ‘미국을 타락시킨 악’으로 몰렸을 때 헤프너는 이 보고서에 담긴 남성의 숨은 욕망을 돈을 벌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다.

극렬한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하던 1950년대 초반, 플레이보이의 등장은 센세이션이었다. 메릴린 먼로의 누드 사진을 표지에 내건 창간호는 5만 부나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잡지는 전성기였던 1970년대 700만 부 넘게 팔렸다. 미국에서 유행한 히피 문화도 잡지의 인기에 한몫했다. 이후 샤론 스톤, 나오미 캠벨, 킴 베이싱어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하며 잡지는 음습한 하위문화에서 주류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허슬러’ ‘펜트하우스’ 등 노출 수위가 더 높은 성인 잡지가 쏟아져 나와 심한 경쟁을 벌이면서 플레이보이의 발행부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또 인터넷이 등장한 뒤 온라인 포르노물이 쏟아지면서 화보 사진에 의존하는 종이 성인잡지의 인기는 급속히 떨어졌다. “더 이상 여성 누드 사진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2015년 발행 부수는 80만 부로 떨어졌다.

플레이보이의 토끼 모양 로고는 미국 성인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헤프너가 개척한 미국 포르노그래피 산업 규모는 현재 한 해 수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1971년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불리는 방 29개짜리 로스앤젤레스 대저택을 사들여 유명 인사들과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또 이곳에서 많은 20대 여성 모델들을 숙식시키며 직접 키웠고 많은 염문을 남겼다. 이 대저택은 헤프너가 사망할 때까지 사는 조건으로 32세 사업가인 옆집 주인에게 지난해 1억 달러에 매각됐다. 헤프너는 2013년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 “기억하긴 어렵지만 같이 잔 여성이 분명히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혼했을 땐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았으며, 결혼하지 않았을 때 충분히 여자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86세 때인 2012년, 그는 자신보다 60세나 어린 20대 중반의 금발 모델 크리스털 해리스와 공식적인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정작 헤프너가 안장될 곳은 부인의 옆자리가 아닌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빌리지 메모리얼파크 공원의 먼로 묘 바로 옆자리이다. 그는 1992년 7만5000달러를 주고 먼로의 옆자리를 구입하면서 “먼로 옆에서 영원히 지낸다는 것은 너무 감미로운 일이어서 그냥 넘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먼로는 창간호에 누드 사진이 실린 이후에도 5차례나 더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이 됐다. 하지만 36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에도 이 잡지에 나왔던 다른 여성 모델들이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반복돼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의 저주’라는 말도 생겨났다.

헤프너는 과거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생전 이룩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성에 대한 태도와 혼전 성관계의 개념을 바꾼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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