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前 美해병대 중장 “피 흘려 지킨 한국, 눈부신 발전에 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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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 케리 前 美해병대 중장, 장진호 기념비 9월 美에 세워
“영하 30도 눈보라에 고립상황…‘고토리의 별’ 떠오르며 반격, 중공군 포위뚫고 흥남철수 성공”

20일 특전사령부를 방문한 리처드 케리 전 미 해병대 중장(오른쪽)에게 장경석 특전사령관이 환영의 꽃을 달아주고 있다. 케리 씨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 소대장으로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에 참전했다. 육군 제공
20일 특전사령부를 방문한 리처드 케리 전 미 해병대 중장(오른쪽)에게 장경석 특전사령관이 환영의 꽃을 달아주고 있다. 케리 씨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 소대장으로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에 참전했다. 육군 제공
“인천 앞바다에서 최고 높이 25피트(약 7.6m)의 파도를 헤치며 나갈 때는 ‘꼭 이 작전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 당시 목숨을 걸고 그 어려운 임무를 해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소대장으로 인천상륙작전에서 활약한 리처드 케리 전 해병대 중장(88)은 66년 전 일이 생생한 듯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후 전선을 따라 올라가며 장진호(함경남도) 전투와 흥남철수 등에도 참여했다.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 초청으로 입국한 그를 19일 새에덴교회 주최 만찬장에서 만났다. 이 교회는 2006년부터 6·25전쟁 참전 해외 용사를 매년 한국에 초청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전쟁 이후 1984, 1988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은 그는 “인천상륙작전 후 진격해 서울 영등포를 지나는데 정육점에서 팔 고기가 없어 고양이 고기까지 갖다 놓은 것을 봤다”며 “마지막 방문이 거의 30년 전인데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이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그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시 출신으로 1945년 해병대 신병으로 입대해 사관학교를 거치지 않고 중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전투기와 헬리콥터, 수송기, 항공모함 이착륙 비행기 등 몰아보지 않은 비행기가 없고, 육상과 해상 임무도 수행한 전천후 해병대원으로 38년간 복무했다.

케리 씨는 과거를 돌이키면서 영하 30도의 혹한에 시달렸던 장진호 전투가 가장 힘들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그는 동료 소대장들의 전사로 3개 소대를 이끌며 12만 명에 이르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그가 속한 미 제1해병사단은 장진군 고토리에서 눈보라 때문에 시야를 전혀 확보할 수 없어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눈보라가 멈추고 하늘이 열리더니 ‘영롱한 별’이 떠올랐다. 이어 공군의 폭격과 해병대의 반격으로 포위망을 뚫고 중공군의 남하까지 저지해 흥남철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당시 ‘고토리의 별’은 해병대원에게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올해 9월 15일 버지니아 주 콴티코 시의 미해병대박물관에 장진호 기념비를 세웁니다. 팔각형 모양의 기념비 위에 별 모양의 장식물을 올립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흥남 부두로 밀려들던 피란 행렬을 꼽았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피란민들을 보면서 저 역시 자유를 찾고자 하는 저들을 흥남에 버려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에 있던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는 20일 국립서울현충원, 특전사령부, 해군제2함대를 찾았으며 미8군, 판문점, 삼성전자 박물관, 전쟁기념관 등을 둘러본 뒤 23일 출국한다.

용인=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6·25전쟁#리처드 케리#흥남철수#고토리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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