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나이팅게일’ 65년만에 훈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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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6·25참전용사 핼컴씨, 北포로수용소서 동료 헌신적 간호
美의회 수훈십자훈장 추진

6·25전쟁 참전용사인 에드워드 핼컴 씨가 미국 플로리다 주 클레이 카운티 자택에서 자신이 그간 받은 각종 훈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잭슨빌닷컴
6·25전쟁 참전용사인 에드워드 핼컴 씨가 미국 플로리다 주 클레이 카운티 자택에서 자신이 그간 받은 각종 훈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잭슨빌닷컴
6·25전쟁 당시 부상한 동료 병사들을 헌신적으로 돌봐 ‘미스터 나이팅게일’로 불렸던 80대 미국 참전용사가 65년 만에 뒤늦게 무공훈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잭슨빌닷컴 등 미 언론이 21일 보도했다. 데니스 로스 플로리다 주 하원의원(공화)은 최근 현재 미국 의회가 조정 중인 2016 회계연도(2015년 10월∼2016년 9월) 국방수권법안에 플로리다 주에 사는 6·25전쟁 참전용사 에드워드 핼컴 씨(84)에게 수훈십자훈장을 수여하자는 조항을 발의했다. 수훈십자훈장은 명예훈장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이다.

핼컴 씨는 1947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불과 16세의 나이로 입대했다. 그와 동료들은 1950년 7월 말 경남 함양군 안의면의 한 초등학교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200명이 넘는 동료 중 약 11명만 생존한 이 전투에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나 북한군에게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결국 안의면에서 서울까지 약 270km의 거리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행군해야 했다.

서울 포로수용소에 도착한 핼컴 씨는 376명의 다른 전쟁포로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특히 그는 각종 감염과 전염의 위험 속에서도 한시도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 또 같은 해 9월 미국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한군이 서울에서 평양까지 퇴각하는 과정, 일명 ‘죽음의 행군’을 겪으면서도 부상자들을 잘 보살펴 이들 대부분이 평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

평양 수용소에 도착한 그는 전세가 불리해진 북한군이 포로 감시에 소홀해지자 1950년 10월 동료 4명과 함께 탈출했다. 로스 의원은 “핼컴 씨는 스스로를 질병과 감염에 노출시키면서 동료 병사의 간호에 힘을 쏟았다”며 “이번 훈장 수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스터 나이팅게일#무공훈장#데니스 로스#에드워드 핼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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