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 김인후 선생 추향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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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추향제가 13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에서 전국 유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장성군 제공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추향제가 13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에서 전국 유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장성군 제공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을 기리는 추향제(秋享祭)가 13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사적 제242호)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서정기 성균관장, 박병호 필암서원 원장, 김달수 울산 김씨 대종회장, 장원석 광주향교 전교, 송준빈 대전 남간사 도유사, 오문복 제주향교 원로, 유두석 장성군수와 주민, 유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추향제에서 초헌관을 맡은 서정기 성균관장은 제를 마친 뒤 서원 내 청절당에서 ‘유교와 현대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론했다. 서 관장은 “독일의 칸트, 헤겔, 라이프니츠와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루소, 볼테르 등 서구 사상계 선구자들이 15∼16세기 유럽에 소개된 공자의 대도(大道)를 연구하고 계몽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서 관장은 “이 사상이 합리주의와 결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이념이 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유학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에 앞서 하서 선생 추모 유적지 탐방 글짓기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김민주 양(12·전남 장성 진원초교 5년)이 자신의 작품인 ‘장성을 드높인 하서 선생님’을 영전 앞에서 읽었다. 하서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1501∼1570)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 중기 유학자로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부수찬이 돼 세자(인종)를 가르쳤다. 인종이 죽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장성으로 내려와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호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았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하서 김인후#추향제#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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