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갈등 허물 제2 민추협 운동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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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 30주년… YS-DJ계 한자리에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 30주년 기념식. 30년 전 그때의 주역들이 동영상을 보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삼(YS)계 회장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장석화, 김봉조 전 의원, 김대중(DJ)계 이사장인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고문, 그리고 YS계의 좌장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 부부.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 30주년 기념식. 30년 전 그때의 주역들이 동영상을 보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삼(YS)계 회장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장석화, 김봉조 전 의원, 김대중(DJ)계 이사장인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고문, 그리고 YS계의 좌장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 부부.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 30주년 기념식. 모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자리였다.

민추협 30주년 기념 메달
민추협 30주년 기념 메달
마치 ‘분열의 상징’처럼 보이던 김영삼(YS), 김대중(DJ) 씨는 23일간에 걸친 YS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다시 손을 잡고, 1984년 5월 18일 민추협을 출범시켰다. 5·18민주화운동 4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양김(兩金)의 공동전선은 강력했고 결국 직선제 개헌투쟁을 거쳐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공동의 투쟁대상이 사라지자 양김은 다시 분열했고 1990년 YS는 급기야 노태우 군사정권과 ‘한 몸’이 됐다. DJ 역시 1997년 대선 땐 JP(김종필)와 연합정권을 꾸렸다. DJ는 서거했고 YS는 병중(病中)인 30주년 기념식장. 그날의 동지들은 제2의 민추협 운동을 외쳤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전에 김영삼 대통령께서 병문안을 오셔서 두 지도자가 화해하셨습니다. 우리는 늦게나마 두 분의 화해가 이뤄진 데 대해 감격하면서 앞으로 민추협은 동서갈등과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 역할을 해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동교동계의 대표인 권노갑 이사장은 양김의 화해를 기정사실화했다.

김덕룡 이사장과 함께 상도동계의 대표인 김무성 회장(새누리당 의원)은 “민추협의 회원이었다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다만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망국병인 동서갈등의 골을 더 깊게 파놓은 역사의 죄를 지었다”며 새 출발을 다짐했다.

민추협은 이날 회원들에게 양김의 사진이 새겨진 기념메달을 수여했다. 마치 훈장 같은 디자인의 메달이었다. 하지만 어느 회원은 지도부를 향해 이렇게 절규했다. “민추협을 위해 헌신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 치료라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창립 당시 회원 480명 중 70명이 사망했고 250여 명이 ‘연락 두절’이라고 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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