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버님을 살아서 만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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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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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화상소녀-치료 도운 미군 60년만에 상봉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국인 리처드 캐드월러더 씨(왼쪽)와 전쟁 당시 그의 도움으로 화상을 치료한 김연순 씨가 60년 만에 만나 포옹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국인 리처드 캐드월러더 씨(왼쪽)와 전쟁 당시 그의 도움으로 화상을 치료한 김연순 씨가 60년 만에 만나 포옹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너무 떨리고,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돼 정말 감사합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국인 리처드 캐드월러더 씨(82)는 전쟁 당시 자신의 도움으로 화상을 치료한 김연순 씨(72)를 만나자 감격에 겨운 듯 목소리가 떨렸다. 할머니 김 씨는 소녀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캐드월러더 씨를 힘주어 껴안았다. 60년 만의 해후였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지난달 31일 5박 6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캐드월러더 씨는 1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 씨와 상봉행사를 가졌다. 스물두 살의 젊은 미국 군인은 백발 노인이 됐고 열두 살의 한국인 소녀도 할머니가 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때의 인연은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53년 5월부터 1년간 경기 수원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캐드월러더 씨는 심한 화상을 입은 채 부대를 찾은 김 씨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왔다. 캐드월러더 씨는 완치된 소녀와의 짧은 재회 뒤 헤어져야만 했다.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군용 트럭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누군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더니 그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저의 시선을 끌려고 치료자국을 보여줬지만 손키스를 날리는 것으로 이별 인사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소녀와의 아련한 추억을 잊지 못한 캐드월러더 씨는 1985년 주한미군 오산기지에서 공군으로 근무한 사위를 통해 김 씨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그는 죽기 전에 소녀를 직접 만나기로 결심하고 올해 초 보훈처에 자신의 사연을 담은 영상편지를 보냈다. 이에 보훈처는 ‘화상소녀 찾기 캠페인’을 벌였고, 제보를 통해 경기 화성시 우정읍에 거주하는 김 씨를 찾았다. 김 씨는 “떨리는 마음에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 ‘미국 아버님’을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날 상봉식에서 김 씨는 캐드월러더 씨에게 한복을 선물했고 캐드월러더 씨는 답례로 시계를 전달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손을 맞잡고 반갑게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전쟁의 포화 속에 힘들었던 60년 전 기억을 더듬어가다가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김 씨를 잊은 적이 없었고 자식들에게도 김 씨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 여린 소녀는 군인인 저에게 진정한 용기와 인내를 보여줬습니다.”

캐드월러더 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 씨와 함께 판문점, 전쟁기념관, 인사동을 방문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4일 캐드월러더 씨와 김 씨의 가족을 초청해 감사만찬을 열고 캐드월러더 씨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과 감사 액자를 전달할 계획이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리처드 캐드월러더#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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