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은 제가 만든 빵만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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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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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현직 최고령 제빵사
임헌양 브레댄코 고문

72세의 현역 최고령 제빵사인 임헌양 브레댄코 고문은 요즘도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그는 “나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빵을 굽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72세의 현역 최고령 제빵사인 임헌양 브레댄코 고문은 요즘도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그는 “나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빵을 굽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임헌양 브레댄코 고문(72)은 대한민국 ‘제빵 명장(名匠)’으로 현직 최고령 제빵사다. 1966년 미8군 안의 클럽 제과사로 빵과 과자의 세계로 들어선 그는 1970년 조선호텔, 1977년 호텔신라, 1983년 신라명과를 거쳐 현재는 신라명과의 고급빵 브랜드인 ‘브레댄코’까지 46년째 빵 외길을 걸어왔다.

임 씨가 호텔신라에 입사한 1977년 당시 이병철 삼성 회장은 일본에서 공수받은 ‘호프빵’만 먹었다. 임 씨가 온갖 연구를 해 빵을 만들어봤지만 이 회장 기준에는 들지 못했다. 어렵사리 일본 현지 연수까지 가서 임 씨가 깨달은 ‘맛의 차이’는 재료에 있었다. 한국 밀가루 질이 크게 떨어져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일본 빵의 맛이 나지 않았던 것.

임 씨는 이 회장을 설득해 호주산 고급 밀가루를 들여왔고 결국 제대로 된 ‘호프빵’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이 회장의 간식은 임 씨가 전담했다. 이 회장이 지방 출장이라도 갈 때면 비서진이 새벽에 와서 임 씨의 빵을 챙겨가곤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먹은 빵도 임 씨의 몫이었다. 어린이날이면 청와대에 어린이들을 초청하는 ‘어린이날 행사’를 위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연례행사였다. 박 대통령 시절 비서관 한 명은 케이크를 주문하면서 높이까지 cm 단위로 정확하게 재서 맞출 것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가 행사 당일 신을 구두굽 높이에 맞춰 가장 편한 자세로 커팅할 수 있도록 케이크 높이를 맞춘 것이다.

임 씨는 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의 명예인 ‘명장’의 자격으로 ‘초지일관’을 꼽았다. 한번 마음을 먹었다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문 직책의 임 씨는 요즘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브래댄코 본사로 1주일에 세 번은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새 메뉴를 만들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이 임무다.

그가 빵을 만들어오던 반세기 한국 제빵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했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한국 제빵사들이 꾸준히 수상하고 있다. 하지만 임 씨는 “한국 빵은 아직 마무리 단계가 부족해 선진국에 못 미친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최고의 빵이 나오려면 ‘자세’까지 완벽해야 합니다. 케이크를 만들고 옆 크림을 덮을 때 허리를 굽히는 각도, 팔을 돌리는 속도와 각도까지도 중요하지요. 오븐에 빵을 넣을 때 순서까지도 꼼꼼히 챙겨야죠. 이런 점이 아직 약간 부족해요.”

임 씨는 ‘한식 세계화’와 관련해 한국 전통음식의 세계화도 좋지만 ‘한국적인 빵’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과빵, 우엉빵, 호박빵, 감자빵을 비롯해 쌈무를 넣은 샌드위치, 된장소스로 맛을 낸 샌드위치가 임 씨가 브레댄코에서 함께 개발한 메뉴다.

“평생 한 우물을 파보니까 이제야 빵이 뭔지 알 것도 같아요. 하지만 지금도 내가 최고라고는 말 못합니다. 내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들까지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빵을 만들어야 할까 항상 연구하고 있습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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