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벨상 수상… 내게도 미스터리 위키리크스 폭로, 위험한 접근일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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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문학상 페루 바르가스 요사 스웨덴 한림원서 회견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어떻게 결정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도 뭐라 드릴 말씀은 없네요. 아직도 내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내 작품에 대한) 세계적인 오해’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웃음).”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는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한국 고은 시인과의 경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 수상은 어쩌면 실수” “나에게도 미스터리”라며 농을 섞어가며 겸손함을 표현했다. 시상식(10일)을 앞두고 5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편안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때로 농담을 섞어가며 내외신 기자 50여 명이 쏟아낸 질문을 여유 있게 받았다. 국내 언론으로는 본보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한림원의 공식 발표 후 직접 소식을 듣기까지 14분 동안 거짓말일 수 있다고 경계했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한 이탈리아 작가가 한림원 관계자라고 속인 동료 작가로부터 거짓말로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진짜로 믿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노벨상 수상이 내 삶에 짜릿한 전류를 흘려준 것은 사실이지만 내 인생을 바꿀 정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시상식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집필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페루 출신인 바르가스 요사는 1982년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남미에서 28년 만에 나온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의 작품은 억압적 체제와 구조에 대한 비판, 부조리에 놓인 개인의 고뇌와 저항 등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메시지가 아닌 문학 자체를,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해 문학이 갖는 감성 자체를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소재로는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 상상력, 열정”을 들었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대표적인 문학가로는 프랑스 작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꼽았다. “플로베르는 광적인 열정과 인내심, 끊임없는 훈련과 집필을 통해 작품 활동 초기보다 시간이 갈수록 문학적 재능을 만들어 나간 대표적인 작가다.”

자신의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유머와 풍자에 대해서는 “좋은 작품이 꼭 유머를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머는 인간의 삶을 즐기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답변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그의 정치 참여 여부. 그는 1990년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고 경쟁자였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이후 그의 부정부패를 강하게 비판했다. 페루는 내년 4월 10일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있다.

그는 이날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일축했다. “1990년에는 조국이 처한 특수상황 때문에 선거에 나갔던 것일 뿐”이라며 “마오이스트 극단주의자들의 잇단 테러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 민주주의의 파괴 등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위해 정치 참여를 시도했지만 이제 그 경험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최근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 전문 공개 파장에 대해서는 “긍정적,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지지하지만, 그런 식의 유출은 때로 국가에 요구되는 은밀한 활동과 사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접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류샤오보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는 “마땅히 상을 받을 인물”이라면서 “나는 모든 독재정권에 반대한다. 중국은 독재국가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정보기술(IT)의 발달이 가져온 전자책 및 영상 자료의 확산에 대해서는 “정말 멋진 진보이지만 적어도 문학의 영역에서는 우리 시대의 (종이책)문학이 주류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며 “IT 첨단기술이 만들어낸 문학은 주된 목적이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인간 삶에 대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성찰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변화는 미래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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