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혁함’ 진수식 참석한 고 박동혁 병장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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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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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살아온듯… 호국정신 인정받아 기뻐”

“선실 명패마다 아들 이름 후배들과 NLL 사수하길”

‘함명(박동혁) 부모 박남준 이경진.’

지난달 28일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열린 ‘박동혁함’ 진수식에 참석한 고 박동혁 병장 가족과 관계자들이 박동혁함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고 박 병장의 고교 3학년 때 은사인 경기 안산 경안고교 김진회 교사, 박 병장 고모 박양미 씨, 어머니 이경진 씨, 경안고교 박상국 교장, 아버지 박남진 씨. 사진 제공 박남진 씨
지난달 28일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열린 ‘박동혁함’ 진수식에 참석한 고 박동혁 병장 가족과 관계자들이 박동혁함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고 박 병장의 고교 3학년 때 은사인 경기 안산 경안고교 김진회 교사, 박 병장 고모 박양미 씨, 어머니 이경진 씨, 경안고교 박상국 교장, 아버지 박남진 씨. 사진 제공 박남진 씨
지난달 31일 찾아간 강원 홍천군 동면의 고 박동혁 병장의 집에는 부모님 이름이 적힌 명찰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박동혁함’ 진수식 때 가서 받은 이름표예요. 우리 동혁이가 다시 살아 돌아온 기쁜 날이라 일부러 잘 보이게 책상 위에 올려뒀습니다.” 이날 집에서 만난 박 병장 아버지 박남준 씨(54)가 명찰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해군은 지난달 28일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박 병장의 이름을 딴 유도탄 고속함 ‘박동혁함(PKG―717)’을 진수했다. 우리나라 해군 역사상 장교나 부사관이 아닌 병사 이름을 함정에 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에도 병사 이름을 딴 함정은 거의 없다고 들었어요. 우리 아들이 보여줬던 호국정신이 이제야 조금씩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것 같아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박 씨는 지난 8년 동안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으로 마음의 상처가 컸지만 이제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고 했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 제2함대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했던 박 병장은 온몸에 파편 100여 개가 박히는 부상을 입고도 마지막까지 포를 쏘며 응전했다. 이후 84일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홀로 외로운 사투를 이어가다 그해 9월 20일 패혈증으로 전사했다.

진수식을 앞두고 박 씨 부부는 아들을 다시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에 하루 앞선 지난달 27일 부산에 갔다고 한다. 진수식장에는 박 병장의 고교 3학년 은사인 김진회 교사와 제2연평해전 생존 전우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자리를 빛냈다. 박 병장 어머니 이경진 씨(54)는 배 곳곳에서 아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길이 63m에 폭 9.1m, 높이 18m 규모인 배 측면에는 동판 형태로 박 병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씨는 “배 바깥뿐 아니라 선실에도 명패마다 우리 동혁이 이름이 적혀 있어 반가웠다”며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그날은 아들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아 기쁜 마음에 울음도 참았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 씨는 아들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 군함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박동혁함에 대해서는 “크기는 천안함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최신 정보기술(IT)이 접목돼 있어 화력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 병장의 부모는 아들이 퇴원하면 함께 요양을 하려고 미리 사뒀던 홍천 땅에서 아들 방을 꾸미며 살아가고 있다. 전국에서 보내온 위문편지와 사진, 박 병장 유품 등으로 꾸며진 그의 방에는 진수식 행사 때 자른 기념 리본, 한진중공업 측에서 기증한 박 병장 추모 사진앨범, 진수식 명찰 등이 더해졌다. 박동혁함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북방한계선(NLL) 사수 업무에 나서게 된다. 박 씨 부부는 “이 배에 동혁이 후임 42명이 오르게 된다고 들었다”며 “동혁이가 후배들과 국가안보를 무사히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천=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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