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한국어가 일본어 제치고 제2외국어”

  • Array
  • 입력 2010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 中1만여명 전공 열풍

全중국 한국어 백일장 대회
예선 거친 47개大 82명 겨뤄

“한국의 역사 문화까지 이해
결국 우리 국익의 우군될 것”

27일 오전 중국 베이징 비전호텔에서 열린 ‘제4회 전 중국 한국어 백일장’에 참가한 중국 47개 대학 한국어학과 학생 82명이 ‘양심’이란 주제어를 받은 뒤 글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베이징=김정훈 기자
27일 오전 중국 베이징 비전호텔에서 열린 ‘제4회 전 중국 한국어 백일장’에 참가한 중국 47개 대학 한국어학과 학생 82명이 ‘양심’이란 주제어를 받은 뒤 글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베이징=김정훈 기자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기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나는 황금이나 보석보다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릴 뻔했다. 불쌍히 나에게 버림받은 양심은 어두운 구석에서 흐느꼈다….”

27일 오전 성균관대 한국어위원회(위원장 이명학 사범대학장·한문학)와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회장 박창원 이화여대 교수)가 공동 주최한 ‘제4회 전(全) 중국 한국어 백일장 대회’가 열린 베이징(北京) 비전호텔. 난징(南京)사범대 한국어과 4학년생인 왕멍메이(汪夢梅·21·여) 씨는 시제가 주어지자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널따란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25일 밤 야간열차를 타고 9시간이 걸려 베이징에 온 왕 씨는 중학교 시절 아이돌 그룹 ‘HOT’의 매력에 빠져 한국어를 전공하게 됐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겨울연가’. 삼성 LG 같은 한국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다. 왕 씨는 “한중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중국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중국 내 47개 대학의 한국어 전공 학생 82명이 참가한 이번 백일장에서 왕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곰팡이가 슨 밀가루를 속여 팔아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체험담을 써내 최고상인 금상을 차지했다. 은상은 산둥(山東)대 4학년생인 첸녠춘(錢念純·24·여), 동상은 산둥공상학원 2학년생인 량수(梁姝·21·여) 씨에게 돌아갔다.

각 대학의 ‘예선’을 거쳐 대표로 뽑힌 참가 학생들은 톈진(天津), 상하이(上海), 다롄(大連), 창춘(長春), 뤄양(洛陽), 시안(西安), 난징 등 중국 전역에서 수백 km씩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왔다. 이번 주제어는 ‘양심(良心)’. 시험장 앞쪽 무대 위에 주제어를 가린 천이 벗겨지는 순간 학생들 사이에서는 “후우∼”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학생들은 주어진 2시간 동안 2000자 넘는 분량을 가뿐히 써내 한국 대학교수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을 놀라게 했다. 글씨도 펜글씨라도 배운 것처럼 멋지게 썼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어 열풍이 불어 닥친 것은 한류(韓流)의 유행이 기폭제였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저마다 ‘대장금’ ‘클래식’ 같은 한국 드라마 및 영화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 아이돌 그룹을 꼽으며 “너무 재미있고 멋지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다 한국 기업의 진출이 늘면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5, 6곳에 불과했던 한국어학과가 지금은 70여 개 대학으로 늘어 1만여 명이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지린(吉林)사범대 박달학원 한국어학원의 김홍철 교수(32·중국동포)는 “한국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이 늘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학생들의 취업률이 매우 높다”며 “한국어가 일본어를 제치고 영어 다음가는 제2외국어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이명학 학장의 주도로 매년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에서 열려온 이 백일장도 중국 내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금, 은, 동상을 차지하면 성균관대 대학원 과정 2년간 전액 장학금이 주어지고 있어서다. 2007년 1회 대회 2등 수상자인 뤄위안(羅媛·25·여) 씨는 올 2월 성균관대 대학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최근 삼성전자에 입사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백일장은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동안 이 학장이 지인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대회를 치러 왔고 올해엔 가까스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았으나 이후의 비용을 조달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 학장은 “한류는 한때의 유행에 그칠 수 있지만 글쓰기를 배우면 한국의 문화와 역사까지 깊이 이해하게 된다”며 “한국을 잘 아는 중국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이들이 그 나라의 지도층이 되면 그보다 더 국익에 보탬이 되는 일이 무엇이겠느냐”고 말했다.

베이징=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