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분위기 맞게 촬영하니 문인들이 줄 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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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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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김훈 등 50여명 찍은 30세 출판편집자 백다흠 씨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김훈의 ‘공무도하’까지, 최근 나온 소설이나 시집에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의 개성을 살린 프로필 사진을 모두 한 사람이 촬영했다는 점이다. 고은, 장정일, 공지영, 김연수, 정이현 씨 등 그가 찍은 문인만 50여 명. 차기작의 프로필 사진을 부탁한 사람도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최근 작가들의 인물사진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는 이 화제의 인물은 누굴까. 젊은 편집자 백다흠 씨(30·사진)다.

작가를 실제 만날 기회가 드문 독자들에게 프로필 사진은 작가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매개일 뿐 아니라 책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의 많은 문인이 책에 실을 만한 사진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따로 돈을 들여 사진을 찍을 만한 여건도 되지 못한다. 백 씨가 본격적으로 문인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만난 백 씨는 “책이라는 것이 한 작가의 오랜 노력의 결과물인 만큼 책이 가진 주제의식과 작품세계를 돋보일 수 있게 하는 사진도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백다흠 씨가 찍은 작가 고은(위), 김훈 씨. 백 씨는 작품의 분위기를 살려 작가 사진을 찍는다. 사진 제공 백다흠 씨
백다흠 씨가 찍은 작가 고은(위), 김훈 씨. 백 씨는 작품의 분위기를 살려 작가 사진을 찍는다. 사진 제공 백다흠 씨
본격적으로 인물사진을 찍은 건 4년 전 한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부터였다. 사진은 취미로 꾸준히 해왔는데, 한두 번 찍다 보니 입소문이 퍼졌고 술자리에서부터 청탁이 몰렸다. 그가 찍은 사진 속 작가들의 모습은 근사하다.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들의 사진을 섭렵하는 데는 작가를 가장 아름답고 돋보이게 해준다는 점도 포함돼 있지 않을까. 그는 “소설이나 시도 아름다움을 목격해서 그것을 퍼뜨리는 것”이라며 “사진도 기본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들이 그를 선호하는 것은 작가의 특징과 문학세계를 잘 반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가 백가흠 씨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는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현재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다. 백 씨는 “작가의 문학관에 맞춰 사진의 콘셉트를 정한다”고 말한다.

“김훈 선생은 글쓰기를 일종의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에요. 작업실에 연필, 책, 원고지 같은 것도 많았지만 그보다 일하는 사람의 느낌, 노동에 지친 모습을 살리는 데 중점을 뒀어요. 반면 신경숙 선생의 ‘엄마를 부탁해’는 자택 베란다에 놓인 장독대를 응시하는 것으로 찍었어요. 모성을 강조한 소설의 주제와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서요.”

그는 “작가들에게 ‘이 책을 냈을 때 이런 기분이었지, 이런 생각으로 썼었지’ 같은 감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진을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 촬영에 익숙지 않은 문인들과의 작업에서 쓰는 비법도 있다. 그는 “대부분의 문인이 포즈 취하는 것을 굉장히 낯설어하기 때문에 대화 상대를 동석시킨 뒤 몰래 찍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작가들이 그때그때 발표한 작품에 맞는 사진을 찍으려 해요. 우리 시대 작가들이 변모해 온 과정을 기록해둘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을 겁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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