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솔사 복원은 한민족 정신 되살리는 것”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만해가 독립선언서 초안 쓰고… 김동리 ‘등신불’ 집필한 천년고찰
역사현장 살리기 본격 추진


다솔사 주지 혜운 스님과 선산(일선) 김씨 대종회 김호용 회장이 10일 오후 다솔사 경내에서 이 절의 역사성을 회고하며 복원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천=오명철 전문기자
다솔사 주지 혜운 스님과 선산(일선) 김씨 대종회 김호용 회장이 10일 오후 다솔사 경내에서 이 절의 역사성을 회고하며 복원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천=오명철 전문기자
신라 진흥왕 때 창건돼 자장율사 나옹화상 등 고승들이 주석하고,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승병기지로 삼은 성지(聖地). 효당 최범술과 만해 한용운 등 애국승려가 독립운동 단체인 만당(卍黨)을 이끌며 차(茶) 부흥 운동과 독립선언서 초안을 집필한 항일 유적지. 미당 서정주가 신라의 제주(祭主)이자 ‘하늘 밑에서는 제일로 밝던 머리’라고 추모했던 선각자 김범부가 ‘풍류’와 ‘화랑도’ 등 신라정신을 탐구한 사상의 고향. 범부를 스승처럼 존경했던 동생 김동리가 ‘등신불’과 ‘황토기’ 등을 집필한 창작의 산실. 우리나라 차의 초식지(初植地)로 거론되는 야생차 재배지.

경남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봉명산(鳳鳴山) 기슭에 자리 잡은 다솔사(多率寺)는 이처럼 자랑할 것이 많은 사찰이다. ‘봉황이 우는 터’라고 불린 명당이어서 임금이 직접 어명을 내려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한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라는 글씨가 선명히 새겨진 바위가 남아있고 산 너머에는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반을 묻은 태실(胎室)도 있었다. 다솔사라는 절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많이 거느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절에서 무슨 일을 도모하면 반드시 일이 성취된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역사성과 절을 거쳐 간 인물들의 면면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와 지자체 문화재 당국의 관심은 너무나 적었다. 고찰(古刹)로서의 품격은 사라지고 흘러간 역사만 남아있는 탓이다. 10일 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 내려가 다솔사에 도착했다. 최근 문중 차원에서 범부 선생 재조명과 다솔사 부흥에 관심을 쏟고 있는 선산(일선) 김씨 대종회 김호용 회장과 함께였다.

다솔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대양루(大陽樓)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민족정신 함양의 도장이자 청소년 교육장인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퇴락한 모습이다. 적멸보궁에는 대웅전 후불탱화 속에서 발견된 108과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마치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같은 구조다.

만해가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김동리가 ‘등신불’을 집필했던 ‘안심료(安心寮)’는 그럭저럭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 한구석에 만해 사진과 찻잔 정도만 전시돼 있고, 김동리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만해가 자신의 회갑을 맞아 효당 스님 김범부 김법린 등과 함께 안심료 앞에 심었다는 황금 편백 세 그루가 위안을 준다. 훤칠하게 잘생겼다. 절 주위에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야생 차밭이 2만 평에 이른다.

올 6월 주지로 부임한 혜운 스님은 “다솔사의 복원은 단지 사찰의 단순 복원이 아니라 민족문화의 복원이자 한민족의 미래를 제시하는 역사(役事)”라며 “우선 내년 초 2010 다솔문화 축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기획통인 봉정 법사와 추전 김화수 화백도 거들고 있다. 이들은 “사천시와 경남도 및 문화재청 등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천=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