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23>‘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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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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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주인아주머니 계세요?작은 돈이라도 아끼는 훈련 필요큰아들 전기계산기 24년째 사용백화점 쇼핑땐 무이자 할부 구매

의류 매장을 둘러보는 장영신 회장. 2009년 9월 AK플라자 분당점에서의 모습이다. 장 회장은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배를 침몰시키듯 작은 지출을 조심해야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 사진 더 보기
의류 매장을 둘러보는 장영신 회장. 2009년 9월 AK플라자 분당점에서의 모습이다. 장 회장은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배를 침몰시키듯 작은 지출을 조심해야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 사진 더 보기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집에서는 가능한 한 주부로 돌아가 일을 직접 한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살 때는 옷차림도 영락없는 주부의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수수한 옷차림에 챙모자를 쓴 채 정원에서 풀을 뽑으면 방문객이 “주인아주머니는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을 할 때가 적지 않았다. 대기업 사장이 직접 집안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집무실도 사람의 기대와 달리 수수한 편이다. 여자 회장이라니까 회장실을 얼마나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으로 꾸몄을까 기대하고 오는 손님이 많았다. 이런 생각은 출입문 옆의 커다란 장롱을 보면 일단 무너졌다. 구식 장롱인데 개인 물건을 담아 놓기에 썩 편리해 가져다 뒀다. “회장실에 웬 구식 장롱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 방에 수십 년 동안 버티고 있었다. 오래된 가구는 대부분 아버지께 물려받았다. 예전에는 더 많았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집무실을 옮기는 과정에서 많이 줄었다. 고가구는 딸(채은정 애경㈜ 전무)에게 넘겨주고, 다른 가구도 자식에게 한두 가지씩 물려줬다.

지금까지 집무실에서 쓰는 가구 가운데서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뒤주와 제주도에서 건너온 절구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 소소한 물건을 보관하는 뒤주는 실용적이면서 든든하고 정감이 간다. 절구는 위에 유리를 덮어 오랜 세월 동안 테이블로 사용하는데 30년도 넘었다. 좋은 고급가구가 많이 나왔으니 바꾸라고 충고하는 이도 있지만 아직 쓸 만한 물건인데 부서지지 않는 한 버리거나 바꿀 이유가 없다.

큰아들(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도 나처럼 오래된 물건을 못 버리는 스타일이다. 아들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전기선을 꽂아 쓰는 큼지막한 전기계산기가 있다. 옛 삼성 로고가 박혀 있는데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누를 때마다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여전히 애용한다. 이 전기계산기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애경에 입사할 때 샀다고 하니 24년째 쓰는 셈이다.

예전에 내 집무실에는 보온병과 커피포트 등 자질구레한 물건이 많았다. 대부분 어떤 기념식이나 회의에서 받아 온 기념품이나 선물인데 이를 모아뒀다가 서울에 가족을 두고 대전공장 등 지방으로 부임하는 사람에게 나눠줬다. 작은 물건이지만 내 진심을 담아서 주는 선물인 데다 꼭 필요로 하는 확실한 주인을 찾아줘서 좋았다.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구로본점)이 1993년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매상을 올리고 백화점도 구경할 겸 손녀와 딸, 며느리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평소에 별로 선물을 사줄 기회가 없었던 터라 오랜만에 “마음껏 고르라”며 호기를 부렸다. 그렇게 10명의 여자가 한바탕 쇼핑을 하고 나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몇 백만 원이 나왔다. 이렇게 많은 금액의 쇼핑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깜짝 놀랐다. 인원수에 비하면 많다고 보기 힘들었는데도 마음을 달래기 쉽지 않았다. 나는 백화점카드를 이용해 3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회장이 자신의 백화점에서 물건을 할부로 샀다면서 박장대소 했다. 하지만 내 경제 개념으로는 무이자 3개월 할부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돈은 많이 있으면 좋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 평생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는 뻔하므로 우선 돈을 모으고 싶다면 쓸데없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배를 침몰시키는 것처럼 작은 지출이 큰 낭비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작은 데에 돈을 쓰지 않으면 그것이 필요하든 않든 간에 인색하다고 폄하한다. 하지만 평소에 절약하는 훈련을 쌓아두어야 큰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돈을 벌어서 쓰지 말고 저축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저축해 차곡차곡 쌓아 가는 일도 즐겁지만 돈을 쓰는 일도 즐겁다. 그러나 쓰는 일과 모으는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하지 않으면 돈의 즐거움은 곧 사라지고 만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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