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속신앙-선비문화-성리학도 매력적인 관광자원”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8분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사장 집무실에서 만난 이참 신임 사장은 “한국인의 넘치는 에너지와 철학적 배경을 잘 조화시켜 한국을 외국인이 꼭 찾고 싶은 매력적인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훈구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사장 집무실에서 만난 이참 신임 사장은 “한국인의 넘치는 에너지와 철학적 배경을 잘 조화시켜 한국을 외국인이 꼭 찾고 싶은 매력적인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훈구 기자
■ 귀화한 외국인으로 관광공사 사장 오른 이참 씨

늘 ‘외국인 벽’ 느꼈는데 한국인 인정받아 감격
흥에 취하는 한국문화 축제 만들어 세계에 홍보
규제풀어 골프장 늘리면 해외 골프관광 사라질것

《지난달 30일 임기를 막 시작한 이참 한국관광공사 신임 사장(55)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수많은 축하 화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환 리본에는 이 사장과 함께 서울시 홍보대사를 지낸 배우 최불암 씨의 이름도 보였다. 공사 맞은편 영풍문고는 이 사장이 2007년 펴낸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답답한 나라 한국’이란 책을 급히 발주해 이날 서가에 꽂았다고 한다. 이 사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이참(李參)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다. 그러면서 외부 인사에게 처음 주는 명함이라고 했다. 업무 보고로 저녁식사까지 거른 그와 마주앉은 사장 집무실은 그의 서구적 외모 때문인지 예의 딱딱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경영철학으로 공사를 이끌 생각이냐고 첫 질문을 던졌다.

“31년째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이 다 됐지만 저는 유럽의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토론 문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죠. 조직은 결코 리더가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겠습니다.”

그는 저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답답한 나라 한국’에서 “한국은 토론은 없고 의견만 있는 사회”라고 통렬히 비판한 바 있다. 자연스럽게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한국관광공사는 2012년까지 정원의 28.9%를 감원해야 한다. 이 사장의 임기 중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가 강조하는 토론문화가 지금부터 공사 내부에서 절실할지 모른다.

“공기업 선진화는 조직의 희생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공사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대 고통 없이 윈윈하는 전략을 짜겠습니다. 우려와 경계의 시선도 있지만 대체로 제게 우호적이라는 걸 느낍니다. 하긴 저를 차별하면 외국인 차별, 인종 차별 아닙니까(웃음). 제가 외국인이라 얻는 호의적 분위기를 앞으로 적극 활용할 겁니다.”

이참 사장은 한국에서 살면서 늘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사회는 외국인에게 2인자는 용납해도 1인자 자리는 쉽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비로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게 됐습니다. 한국인으로 드디어 인정받아 감격스러웠고, 귀화한 것에 대한 후회도 없어졌습니다.”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자녀 이름도 구수하게 지었다. 아들 복단 씨는 현재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 딸 향림 씨는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다. 지금은 한국사회도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이 거의 사라졌지만 이들이 자랄 때만 해도 다문화가정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 사장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서구 외모인 제 얼굴이 이제 한국 관광의 ‘얼굴’이 됐으니 외국에서도 한국을 좀 더 세계화된 나라로 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한국 관광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그의 복안은 무엇일까.

“발로 뛰면서 굵직한 국제회의를 한국으로 끌어올 겁니다. 한국의 축제자원도 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겠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도 그랬지만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인들이 보낸 열띤 호응을 지켜보면서 놀랐습니다. 술 안 마시고도 그토록 흥에 취할 수 있는 국민은 세계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또 한국엔 태백산맥 등 얼마나 신비로운 자연이 많습니까? 토속 종교와 무속 신앙, 선비 문화와 성리학, 기공체조도 외국인에게 동양 철학의 매력을 줄 수 있는 관광자원입니다. 한국인의 흥과 전통, 건강 이렇게 셋을 조화시켜 축제로 만들면 한국이 ‘영적인 관광지’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각계 인사와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 ‘한국 관광 서포터스’도 만들고 싶습니다.”

몇 년 전 그는 한 와인행사에 참석해 “개고기와 와인은 환상궁합”이라고 말했다. “유럽 관광객은 책임지고 끌어 오겠다”는 그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말고기를 먹는 프랑스 사람을 비난하는 말은 거의 못 들어봤습니다. 프랑스 문화는 고급문화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개고기를 먹는 한국 사람도 애견은 먹지 않습니다. 관건은 한국 문화를 고급화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뭘 먹든 시비 걸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는 다음 주부터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운다. 독일어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 라틴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이은 도전이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 왔던 그는 ‘하루에 한 단어를 외운다’는 마음가짐으로 한국어를 익혔다고 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영어 조기유학 열풍에 대해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유학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환율 덕분에 올 초 외국인 관광객이 반짝 늘긴 했지만 한국의 만성적 관광수지 적자는 이 사장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과제다. ‘싼 맛’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은 생명력이 짧다. 하지만 내국인들은 자녀 영어교육을 위해, 골프 관광을 위해 계속 외국에 간다. “규제 완화가 필요합니다. 골프장과 특급호텔은 공급이 적어 비싼 겁니다. 제일 중요한 건 우리 국민들이 국내 구석구석을 재미있게 관광해야 합니다. 그래야 외국인도 한국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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