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빠진 한국 학생들, 이웃돕는 마음도 가졌으면”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4분


김용 하버드대 교수, 한국인 첫 아이비리그 총장 내정

5세때 美 이민… 개도국 질병퇴치 활동 명성

2006년 타임지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400 대 1 경쟁 뚫고 다트머스대 사령탑으로

미국 아이비리그에 첫 한국인 총장이 탄생했다.

다트머스대 재단이사회는 2일 김용(미국명 짐 용 김·49)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사회의료과장을 1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임기는 7월 1일 시작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대 등 미 동부 8개 명문 사립대를 가리키는 아이비리그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계가 총장에 선임된 적은 없었다. 240년 역사의 다트머스대는 작년 6월부터 400여 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선임 작업을 벌여왔다.

김 교수는 다트머스대 총장 내정 발표 직후 뉴욕특파원들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5세 때 미국으로 이민왔는데 이제 아이비리그 총장을 맡게 돼 한국 이민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매우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충고를 묻는 질문에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가정이 딱 2가구에 그칠 정도로 낯설었던 미국 중부 아이오와 주 머스커틴으로 이민을 온 김 내정자는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의학 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년 넘게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는 학자로 머물지 않고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서 에이즈와 결핵 등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 퇴치활동을 주도하며 인도주의적 활동과 국제 의료활동으로도 명성을 쌓아왔다.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으로 임명돼 전 세계적인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확대를 주도했다. 2005년에는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그를 ‘미국의 최고 25인 지도자’로 선정했고, 2006년에는 타임이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았다.

김 교수는 ‘앞으로 질병퇴치 활동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 몸을 던져 질병퇴치 등에 나섰지만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차세대들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2일 다트머스대에서 연설을 통해 “누구보다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가장 실질적인 직업인 치과의사로 일했던 아버지는 내게 근면의 미덕을, 철학을 공부한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2006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개발국 의료 지원에 너무 인색하다”며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김용 총장 내정자는

△1959년 서울 출생 △1964년 미국으로 이주 △1982년 브라운대 졸업 △1991년 하버드대 의대 졸업 △1993년 하버드대 박사(인류학) △1996년 하버드대 ‘감염질병 및 사회변혁 프로그램’ 공동과장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 △2005년 하버드대 ‘국제보건·사회의료과’ 과장 △2006년 타임, ‘2006년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2009년 3월 2일 다트머스대 17대 총장에 내정

故 이종욱 박사-金 교수 ‘아름다운 인연’

李 박사 WHO 총장 재직때 WHO 에이즈국장 임명

金 교수 “李박사의 숭고한 삶 내인생에 많은 영향”

김용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다트머스대 신임 총장에 내정되면서 그와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사진)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2006년 타계한 이종욱 박사는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의 수장을 지낸 첫 한국인으로 전 세계 빈민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면서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명성을 쌓은 인물.

김 교수와 이 박사의 만남도 의료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페루에서 내성결핵 퇴치 활동을 벌였는데, 이때 페루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이 박사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를 만나게 된 것.

젊은 의학도의 봉사정신과 열정을 높이 산 이 박사는 2003년 1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그를 총장 자문관으로 발탁했고, 이듬해에는 WHO 핵심 요직인 에이즈국장으로 임명했다. 이 박사는 뒤늦게 한글을 열심히 배우려는 김 교수의 모습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이 박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혁혁한 성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2006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박사의 숭고한 삶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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