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투사, 이제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 입력 2006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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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의 시베이대 교비 앞에서 영정을 들고 있는 이형진 씨. 영정 왼쪽 사진은 큰아버지, 오른쪽 사진이 부친인 이재현 선생. 시안=부형권 기자
중국 시안의 시베이대 교비 앞에서 영정을 들고 있는 이형진 씨. 영정 왼쪽 사진은 큰아버지, 오른쪽 사진이 부친인 이재현 선생. 시안=부형권 기자
‘항일 독립투사.’

이 호칭은 분명 다시 찾은 조국의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그러나 ‘투사’ 아버지를 둔 가족에게는 말 못할 고난과 시련의 다른 이름일 때가 적지 않다.

군(軍) 전자파 대책 전문회사인 ‘에미텍’ 대표 이형진(52) 씨에게도 ‘투사’는 고난과 시련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그의 아버지는 광복군 장교로서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처(OSS)와 합작해 국내 진입을 준비한 독립운동가 이재현(李在賢·1917∼1997) 선생.

이 씨는 뒤늦게라도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가 주관한 ‘중국 내 항일무장투쟁지 답사’(8월 5∼16일)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회한의 사부곡(思父曲)을 띄웠다.

아버지, 당신은 항일무장투쟁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투사였습니다. 1963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으셨습니다.

남들은 저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뒀다’고 하지만 저는 솔직히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가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어려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2남 3녀를 키워 내야 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에스페란토-한국어사전 편찬을 평생의 사업으로 삼으시면서 가족의 생활비까지 쏟아 붓던 아버지가 저는 정말 미웠습니다.

1973년 여름. 만 10년간 혼자 외국에 나가 있다 귀국하신 아버지는 군 복무 중인 저를 면회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술 한잔을 건네셨지만 저는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며 외면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아버지께 “박정희 대통령 좀 찾아가 보시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도 대통령에게 항일의 대가를 요구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조국은 목숨을 바칠 만한 값어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항일 투쟁을 했을 뿐이다. 투사는 투사다. 투사는 대가나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1997년 2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긴 유산은 연금 통장의 45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7일 중국 시안(西安)에 도착해 아버지가 몸담은 광복군 2지대의 주둔지와 훈련장, OSS 대원 숙소터 등을 둘러봤습니다. 8일엔 시안 시베이(西北)대 교정에서 아버지와 큰아버지(이재천·李在天·독립운동가) 영정을 세워 놓고 간단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고국에서 가져온 제물(祭物)은 생전에 아버지가 즐기시던 소주와 초코파이가 전부입니다.

아버지, 이제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시안=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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