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민원도우미(민원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강선희(姜鮮嬉·69) 할머니는 최근 들어 ‘돈 문제’로 가족이나 친인척, 가까운 지인들끼리 송사(訟事)를 벌이는 일이 많아졌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화여대 법과대학 8회(1960년) 졸업생인 강 할머니는 벌써 6년째 거의 매일 법원에 나와 법을 몰라 고생하는 민원인들을 도와주고 있다. 법원도우미 가운데 최고령이지만 가장 열심히 일한다.
강 할머니가 법원 민원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3월. 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6개 대학 법대 동문들을 대상으로 민원업무를 도와줄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53명이 민원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1년도 안 돼 그만뒀고 강 할머니 혼자 남았다.
강 할머니는 “생애 가장 보람된 일을 하면서 노경(老境·나이가 많은 시절, 황혼)을 걸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바람에 법조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법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가족’이 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 취임식 때 강 할머니를 초대하기도 했다.
강 할머니는 지난 6년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용산구 청파동 집에서 전철을 타고 서초구 서초동 법원으로 향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법원 곳곳을 다니며 민원인들을 돕는다.
“내가 책상에 그냥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안 찾아와요. 직접 법원 곳곳을 찾아다니며 ‘어려운 일 없느냐’고 물어보죠.”
강 할머니는 가처분 호적 이혼 개명 등 민사사건은 물론 형사사건 탄원서에 이르기까지 직접 소장을 들고 찾아온 이들의 서류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준다. 글을 쓸 줄 모르거나 장애로 손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찾아오면 대신 글을 써주기도 한다.
강 할머니는 “요즘같이 돈 벌기 힘든 세상에 법무사 비용 대기가 힘든 사람도 많다”며 “내가 도와준 소장으로 승소했다며 찾아와 큰절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풀 죽은 표정으로 파산 신청을 하러 온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일일 식대 1만 원을 쪼개 법원 구내식당에서 식사 한 끼를 사주며 ‘용기 잃지 말라’는 말을 건넨다.
강 할머니는 “법도 세상도 바뀌었는데 배워야 남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가정법률상담소에서 가정법률 상담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요즘도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법전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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