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보호관찰 종료… 9년1개월만에 자유의 몸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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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주 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형 집행 종료 판결을 받은 로버트 김 씨(왼쪽)와 부인 장명희 씨가 5일 버지니아 주 애슈번 자택에서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 주 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형 집행 종료 판결을 받은 로버트 김 씨(왼쪽)와 부인 장명희 씨가 5일 버지니아 주 애슈번 자택에서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한국에 군사기밀을 제공한 혐의로 전격 구속(1996년), 7년 8개월간의 수감생활, 석방 후 가택연금(2004년 6월), 다소 느슨해졌지만 계속되는 보호관찰….

미국 해군정보국(ONI) 근무 시절인 1996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기밀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며 한국인을 안타깝게 했던 로버트 김(김채곤·金采坤·65·사진) 씨. 그가 4일 미국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을 종료한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첫 구속 후 9년 1개월 만에 진정한 자유의 몸이 됐다.

5일 아침 버지니아 주 매너서스 파크의 자택에서 만난 김 씨와 부인 장명희(張明熙·62) 씨는 활짝 웃고 있었다. 오전 3시까지 축하전화를 받았고, 6시에 서울의 한 방송국에서 걸려 온 전화에 잠이 깼다고 했다. 마침 간밤에는 1996년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무관으로 ‘기밀’을 넘겨받았던 백동일 전 대령이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너무 좋다. 날아갈 것 같다”며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김 씨는 다음 달 한국 방문 계획을 말했다. “어려서 자랐고, (수감 및 보호감호 도중에 타계한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고향인 전남 여수시도 찾아가 보겠다”고 했다.

활짝 웃던 김 씨였지만 수감 중이던 2004년 1월 타계한 부친의 이야기가 나오자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그의 모친 역시 가택연금 중이던 2004년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아버님이 마지막엔 정신이 맑지 못하셨는데, 옥중에서 녹음해 보내드린 내 목소리를 듣고는 ‘채곤이구나’ 하셨다”는 기억도 떠올렸다. 그는 “불효자를 용서하시라는 말밖에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발목에 전자장치를 단 채 보호관찰 상태였던 그는 지난해 부친의 1주기 때 한국 방문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때 그는 한국 정부에 야속함을 느꼈다고 했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한국이 조국이라는 느낌이 없다면 정보를 넘겨주지도 않았을 텐데, 한국 정부는 ‘미국인이 미국 법을 어겼다’며 외면했다”는 말도 했다. 지난해 7월 출간한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에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나를 우울하게 했다. 배신감이 들었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수감생활을 통해 용서와 자제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주1회 허용된 면회를 위해 168마일을 달려 ‘용서의 메시지’를 갖고 와 줬다”며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아내 장 씨가 버지니아 주와 교도소가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를 넘나들며 면회를 다닌 것이 줄잡아 400회에 이른다.

김 씨는 “청소년에게 할아버지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국가관을 심어 주는 일에 힘쓰고 싶다”는 앞으로 계획도 밝혔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가 북한을 너무나 잘못 이해하고 있고 미국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환상을 갖고 있다”며 “내가 이해하는 북한과 미국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 성원해 주는 한국의 후원 그룹, 신앙의 힘으로 이 모든 시간을 견뎠다”고 말했다.

한국의 후원자들은 그의 가석방을 1년 앞둔 2003년 7월 ‘로버트 김 후원회’를 발족했다. 오랜 법정 투쟁과 수감생활로 파산 상태에 이르러 생계조차 위협받는 김 씨 가족에게 낯모르는 ‘후원회원’의 지원은 큰 힘이 됐다.

김 씨의 친동생인 열린우리당 김성곤(金星坤) 의원은 이날 “부모님 살아생전에 이 소식을 듣지 못하게 해드린 게 한스러울 뿐”이라며 “아직 형님의 여권 재발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연내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ONI에서 컴퓨터 분석관으로 근무하던 1996년 주미 한국대사관 측에 북한군 동요 여부, 인도 지원 식량의 북한군 유입 여부, 북한의 수출입 무기 현황 등의 정보 50여 건을 넘겨준 혐의로 체포됐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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