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달랜 트로트 4000곡 남겨…원로작가 백영호씨

  • 입력 2003년 5월 22일 00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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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타계한 원로 작곡가 백영호(白映湖) 선생은 이미자씨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빅히트곡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추억의 소야곡’ 등 이미자씨의 히트곡 중 상당수가 백 선생의 작품이며 문주란씨의 ‘동숙의 노래’와 남상규씨의 ‘추풍령’도 그가 썼다.

그의 작품은 미발표곡을 포함해 4000여곡에 이르며, 5000여곡의 노랫말을 지은 원로 작사가 반야월 선생과 더불어 각각 작곡과 작사 부문에서 최다 작가로 불린다.

그는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탁월한 음감과 치열한 노력으로 주옥 같은 트로트를 남겼다. 특히 작품에 쏟은 열정만큼은 모든 가요인이 인정하고 있다. 가요계 선배인 반야월 선생은 “작품에 대한 결심과 의지가 대단했던 분”이라며 “생명을 걸다시피 하면서 한곡 한곡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이미자씨는 “따스하고 섬세한 내면을 가진 선생님이 작품에 대해서는 어찌나 엄격한지 조금만 흐트러져도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고 전했다.

그의 노래에는 서민적 서정이 촉촉하게 배어 있다. 청년 시절 만주와 몽골까지 유랑하며 고향을 떠난 슬픔을 달랬던 그의 고독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평이다.

고인은 늘 “한국 작가들이 60세가 넘으면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데 나는 죽는 날까지 악보를 놓지 않을 것”이라며 작가정신을 지켜왔다. 올 1월에는 김영 부산MBC 사장이 쓴 가사에 곡을 붙였으며 4월 중순에는 녹음실에 가서 이 노래의 취입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작곡가로도 활동한 바 있는 아들 경국씨는 “지금도 미발표곡이 집에 많이 남아 있다. 백 선생은 아버지이기 이전에 작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던 분”이라고 말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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