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에 산다]42개월 요트 세계일주 강동석씨

  • 입력 1998년 1월 5일 20시 49분


《산악인들은 왜 산에 오를까. 더이상 오를 수 없는 정상에 서면 허망하지 않을까. 카레이서들은 왜 미친듯이 달릴까. 질주가 끝나고 나면 ‘저문 강가에 선 나그네’처럼 쓸쓸하지 않을까. ‘뭔가에 목숨을 건 사람’ ‘뭔가에 미친 사람’은 아름답다. 그들을 찾아가 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온 몸을 바늘끝으로 쑤시는 듯한 끔찍한 통증. 자식공부시킨다고 미국에 이민 온 부모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오로지 공부에 매달렸던 중고등학교 시절. 바라던 대학(UCLA)에 들어갔지만 또 공부 공부. 입학 기념으로 아버지가 내 준 중형지프를 몰고 네바다 사막을 질주한 건 생애 첫 일탈이었다. 끝없는 사막, 저녁노을, 카스테레오에서 흘러 나오던 보브 딜런의 목소리…. 갑자기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눈앞을 막았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몸이 사정없이 튕겨나가는 느낌. 그리고 끝이었다. 삶에는 모범 답안이 따로 있으며 맘만 먹으면 1백점짜리 답안지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때,89년10월이었다. 그러나 1년 뒤 강동석씨(29)가 ‘요트타고 세계일주’라는 진짜 사고를 치도록(?)했던 계기는 바로 당시 교통사고였다. 전신을 36바늘이나 꿰매고 2개월동안 병원신세를 지며 그가 생각했던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 단 한번뿐인 인생,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무조건 책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윌리엄 버클리’의 요트 여행기에 흠뻑 빠졌다. 돛에 바람을 실어 세계를 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1년간 준비끝에 90년11월7일 하와이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는 1만3천㎞ 대장정의 돛을 올렸다. 첫 항해는 혹독했다. 수시로 만나는 상선 어선 암초 식인고래 걱정에 새우잠을 자야했고 식수는 썩어버려 통조림 국물로 갈증을 채웠다. 버너는 고장나 생라면과 꽁치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웠다. 배멀미로 탈진이 이어졌다. ‘다시는 배를 타지 않으리라’. 출항 1년만에 드디어 부산항 도착. 11년만에 밟아본 고국땅에서 미팅도 하고 등산도 다니며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공부도 했다. 그러나 한국체류 1년만에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는 비보가 날아들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1년 뒤 “배에 구멍을 내겠다”며 만류하는 부모를 뒤로 하고 2차 세계일주 대장정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순식간에 거지가 된 가족을 보면서 거짓 위선 이기에 가득 찬 육지가 싫었다. 다시 바다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후 3년6개월간의 길고 길었던 항해. 그 옆에는 항상 죽음이 함께 했다. 망망대해 위에서의 절대고독, 삼켜버릴듯 덮치는 바람과 파도,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 존재구나…. 그러나 그는 변하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노을의 아름다움. 눈물을 흘리면서 신을 받아들였다. 느긋함 여유 포용력 겸손함, 이 모든 미덕을 그는 바다에서 배웠다. “난 아버지 임종도 못한 불효자다. 어떤 면에선 실패한 사회인이다. 하지만 난 자유로우며 어떤 고난도 맞닥뜨릴 용기가 있다. 나는 내가 원했던 요트 세계일주를 했다. 앞으로 나의 삶은 덤. 더욱 열심히 살 것이다.” 다시 대학에 복학,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힘이 넘쳐흘렀다. 〈허문명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