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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건설현장 ‘바위’에 던지는 ‘계란’[2030세상/배윤슬]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입력 2024-02-05 23:30업데이트 2024-02-0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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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도배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일반 직장생활과 달리 오로지 도배만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인간관계라든가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에 치이지 않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전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술직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했고, 그 생각이 기술직으로 전직하게 된 하나의 중요한 이유였다. 하지만 직접 도배 일을 받아오고 맡은 일에 대해 책임지는 위치가 되고 보니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수직관계, 갑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전체 건설을 책임지는 건설회사에서 예전에는 하청업체라고 불렀던 협력업체에 도배 일을 맡기면 업체는 다시 도배 소장에게, 도배 소장은 또 각 동을 맡을 도배사들에게 일을 나누어준다. 동을 떼어 받아 일을 하는 나는 이 위계질서 맨 아래에 놓여 있는 셈이어서 도배 소장에게도, 건설사 직원에게도 갑을관계의 ‘을’에 해당하는 근로자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구두 계약으로만 일을 하다 보니 불합리한 상황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본사 직원들과 부딪치게 될 경우 현장 직원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은 바로 ‘퇴출’이다. 자신들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쫓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 우리 팀이 사용하고 있던 전기선이 사전 통보 없이 주말 사이에 잘린 일이 있었다. 담당 전기 기사가 위험하지는 않지만 전선 관련 규정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주말이 지난 후 자체적으로 교체할 예정이었다. 알고 보니 전기 기사가 아닌 일반 직원이 잘라버린 것이었다.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고, 사과 한마디 없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장을 나가라는 이야기만 했다. 매우 불합리하고 억울했으며 개인 비용을 지불해 구입한 고가의 물건이었음에도 어떠한 배상도 받지 못했다.

건설 현장 작업자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작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면 순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 직원들과의 갈등 상황이 길어질수록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 역시 불합리한 지시에 순응하면 더 빨리 일에 매진해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합리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악습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늘 피하기보다는 맞서는 선택을 하는 편이다. 현장 상황과 근로자들의 작업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규정과 부딪칠 때면 이런 것들이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 이런 규정들로 인해서 오히려 작업자들을 더 위험에 몰아넣거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생각한다. 관리 감독하는 담당자들과 이야기해보려 시도하기도 한다.

현장의 직원들, 안전 담당자들과 대화가 잘되지 않으면 내가 하는 노력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헛된 노력은 아닌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그들이 만든 규정이나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고 일을 하며 돈만 벌면 끝 아닐까 포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버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내가 현재 일하고 있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일하게 될 일터가 조금이라도 더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곳이 되는 것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계란을 계속 던져볼 생각이다.

2030세상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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