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중대재해법 확대 강행 野, ‘소주성 비극’ 잊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1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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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착한’ 정책에 위협받는 일자리
최저임금 사태 겪고도 교훈 못 얻어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광주의 한 카페 주인은 2021년 6월 “진짜 서민의 삶을 1도 모르는 패션좌파들이 ‘시급 만 원도 못 줄 것 같으면 장사 접으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초 2년 만에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오른 뒤 아르바이트생 월급보다 집에 가져가는 수입이 적은 자영업자 사장님들이 속출하던 때였다.

그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삶이라도 나아졌어야 했다. 한국의 저소득층은 홀로 벌어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가족 구성원 중 여럿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아빠, 엄마가 함께 돈 벌던 가정에서 한쪽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많아졌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총수입은 감소해 삶은 오히려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계속 일하는 쪽도 편치 않았다. 주 5일, 15시간 이상 일할 때 주는 주휴수당이 부담스러운 자영업자가 많아지면서 ‘주 15시간 미만 알바’가 파트타임 일자리 표준이 됐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하던 이들은 2곳 이상 일터를 옮겨 다니거나, 배달 일을 병행하는 ‘N잡러’가 됐다. 몇 해 전부터 자주 발생한 저소득층 일가족, 자영업자들의 비극적 선택에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광주 카페 주인이 분통을 터뜨린 그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터졌을 때 안전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 안전 관리 책임자에게 1년 이상 형사 처벌, 1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다. 형벌 하한선을 ‘1년 이상’으로 둔 건 ‘감옥 가기 싫으면 안전 조치를 철저히 하라’는 취지다. 문제는 법이 너무 모호해 어떤 예방 조치를 얼마나 해야 사고가 터져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재작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된 이 법이 지난달 27일부터 근로자 수 5∼49인의 83만7000여 개 사업장에 확대 적용됐다. 영세 사업자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적용을 2년 늦추자는 정부와 국민의힘의 요구를 민주당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부해서다. 산재 사고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유예 없는 강행을 요구한 노동계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인들이 국회로 몰려가 재고를 요청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알바생 포함 5명 이상 직원을 쓰는 모든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대상이란 소식에 음식점, 빵집, 카페 사장들은 당황해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민주당은 ‘동네 빵집’에서 중대재해가 나봐야 얼마나 되겠냐며 정부 여당의 ‘공포 마케팅’이라고 일축한다. 고용이 위축될 거란 경제계 우려도 과장됐다고 한다. 지난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히 올릴 때와 판박이 같은 반응이다.

중대재해법을 피하려고 종업원 5, 6명 중 한두 명을 해고할 사업주가 있겠냐는 생각은 ‘최저임금 좀 올린다고 고용이 줄겠냐’는 물음만큼 순진한 발상이다. 내가 직원 4명을 둔 자영업자일 때 일이 벅차다고 직원을 추가로 뽑아 중대재해법 리스크를 질 건지 자문해 보면 답이 나온다. 예상할 수 없고, 어떻게 대비할지 알 수 없는 사고가 터져 형사 처벌을 받고, 삶과 일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건 확률이 낮더라도 사업주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이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다 비슷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난 정부의 소주성은 최저생계 선상에 있는 한국 저소득층 가정에 중대한 불행의 원인을 추가했다. 그런 정책을 밀어붙였던 이들 중 진지하게 반성한 이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다시 중대재해법 확대라는 새로운 비극의 씨앗을 심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중대재해법#확대 강행#소주성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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