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배압의 모험은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개경 사수를 결심한 현종의 더 대담한 결정과 고려군의 맹렬한 추격 덕에 실패하고 만다. 개경 입성에 실패하는 바람에 거란군은 굶주림과 피로를 해소할 기회를 놓쳤다. 지치고 낙담한 몸으로 회군하던 거란군은 귀주성 앞 벌판에서 강감찬의 고려군을 만나 전멸한다. 이것이 귀주대첩이다.
거란의 진짜 목표는 송나라 정복이었다. 전군을 동원해 송을 침공했을 때 배후에 있는 고려나 여진이 거란을 치면 양면협공에 걸린다. 거란은 먼저 여진과 고려를 정복해 이런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사람들이 거란전쟁의 교훈은 왜 망각했을까. 이념과 사상을 먼저 세우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운다기보다는 역사를 이용한다. 목적에 맞춰 현실을 왜곡하고,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외쳤다. 그 결과가 삼전도의 굴욕이다. 다시 400년이 지났다. 비슷한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걸까. 인간의 지성에 한계가 명확한 것일까.
임용한 역사학자